원래 과학적 가치 확인엔 긴 시간이 필요
AI 등장후 수십년 걸릴 연구시간 짧아져
'K문샷 프로젝트' 연구 생산성 향상 기대
2026년 노벨상 시즌이다.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등 과학 분야의 수상자가 잇따라 발표되는 한 주다. 누가 수상할지를 미리 알아맞히기는 쉽지 않다. 후보자 명단과 심사 내용, 투표 기록 등은 '50년 비공개 원칙'에 따라 철저히 비밀에 붙여진다.
누가 상을 받았는지만큼이나 언제 이루어진 연구로 상을 받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상당수는 수십 년 전의 업적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2019년 화학상을 받은 리튬이온전지 연구는 1970년대부터 축적된 결과였고, 2023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mRNA 연구도 코로나19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시작됐다. 한때 주목받지 못하던 연구가 수십 년 후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기술이 된 것이다.
2013년 물리학상을 받은 피터 힉스는 1964년 힉스 입자의 존재를 예측했으니 거의 반세기 만에 상을 받았다. 중력파는 더 극적이다. 아인슈타인이 그 존재를 예측한 것은 1916년이지만 실제 검출은 거의 한 세기가 지난 2015년이었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확인하는 데 한 인간의 생애보다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노벨위원회가 일부러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발견의 가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결과는 다른 연구자들의 검증과 후속 연구를 거치면서 의미가 드러난다. 힉스 입자와 중력파 역시 이론을 검증할 거대한 실험장치와 정밀한 측정기술이 갖춰지기까지 오랜 과학적·공학적 축적이 필요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모습도 나타난다. 2024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와 존 점퍼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AI 기반 알파폴드2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했다. 2021년 '네이처'(Nature)에 핵심 논문을 발표한 뒤 불과 3년 만에 노벨상을 받았다. 50년 넘게 풀리지 않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AI가 돌파한 것이다.
이처럼 AI의 등장으로 과학의 시간표가 달라지고 있다. AI는 방대한 논문과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가설과 신약·신물질 후보를 찾아낸다.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과 결합하면 수많은 후보를 실험에 앞서 걸러낼 수도 있고, 로봇이 실험하고 그 결과를 다시 AI가 학습하는 자율실험실도 등장했다. 가설에서 실험과 분석, 다시 새로운 가설로 이어지는 과정 자체가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과 한국의 'K-문샷 프로젝트'는 이를 국가 차원의 과학전략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슈퍼컴퓨터와 과학 데이터를 AI와 연결해 신약, 신소재, 에너지 등 주요 분야의 발견을 가속화하려는 것이다. 제네시스 미션은 미국 과학 연구의 생산성과 영향력을 10년 안에 두 배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K-문샷은 2035년까지 12대 국가 미션을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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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AI가 과학의 시간을 모두 없애주는 것은 아니다. 발견의 진정한 가치를 판단하려면 반복적인 검증과 현실 세계에서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제 인간에게는 방대한 데이터를 읽고, 수많은 가능성을 계산하고, 다음 실험까지 제안하는 새로운 도구가 생겼다. 과학의 오랜 기다림은 상당 부분 짧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한 세기 노벨상의 역사는 위대한 과학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알파폴드가 보여주었듯 AI 시대에는 그 공식마저 달라질지 모른다. 이번 주 노벨상 수상자들의 연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면서, 앞으로의 수상자들은 얼마나 기다리게 될지도 생각해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