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의 연휴 중간이었던 지난 토요일 오전 10시.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윤창중 대변인 명의의 문자를 한통 받았다. '11시 정부 인선 발표'. 통상 토요일은 일요일자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탓에 기자들이 출근하지 않는다. 그런 날 국가정보원장 등 정부 요직 인선을 발표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국정원장과 금융위원장, 국무총리실장 내정자를 발표했고,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여야 간 첨예한 대치로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가 불투명해짐에 따라 '국정공백' 장기화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변인은 특히 북한 핵실험에 따른 안보위기와 세계 경제위기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국정공백' '국정차질'이란 표현을 수차례 쓰며 깊은 우려감을 나타냈다. 실제 안보 분야는 상황이 심각하다.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으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임명을 받지 못해 공식 업무를 시작도 못했다. 김병관 국방장관 후보자는 각종 의혹 제기로 야당이 인사청문회조차 열어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결국 법과 관련 없는 국정원장에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하루 빨리 임명, 안보를 챙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윤 대변인은 "어느 때보다 국가의 안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국정원장을 우선적으로 발표하게 됐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남 내정자는 육사 25기로, 수도방위사령관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2007년 대선 경선 때 특보로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지난해 대선 때에도 국방안보특보를 맡았다. 남 내정자와 함께 김 실장, 김 후보자 등 안보라인은 물론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까지 육사 출신 '전성시대'가 열렸다.
금융위장과 국무총리실장 인선에 대해서도 윤 대변인은 "세계 경제 위기와 국내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상황 파악과 대처가 시급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실상 자릴 비운 상태다. 현오석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일정조차 잡히지 않고 있는 탓이다. 일단 대표적 국제금융전문가인 신제윤 금융위장 내정자로 하여금 현 경제위기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게 하고 대처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동연 국무총리실장 내정자 역시 기획재정부 제2차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을 지낸 정통 예산 관료다.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좌하면서 국무 현안의 실무조정을 하기에는 적임자로 평가된다. 김 내정자는 추후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 국무조정실장으로 재 발령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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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이용한 '깜짝 인선'은 국정공백 최소화는 물론 여론을 등에 업고 야당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인선 하루 전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는 이례적 '호소문'을 발표한 것도, 인선과 함께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청와대 회동 계획을 공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민주당은 "주말 인선이 꼼수"라고 평가 절하했고, 지도부가 박 대통령의 회담 제의를 수락한 것처럼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회담은 무산됐다.
남은 권력기관장 인선도 조만간 이뤄지며 대(對)야 압박 수위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총장은 법무장관의 제청이 있어야 가능한 만큼 정부조직 개편안 처리와 맞물려 있다. 반면 감사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나머지 사정기관장들은 발표가 가능하다. 윤 대변인은 "확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경제민주화를 실행할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장 인선에 대해선 "다음 브리핑 때 말씀 드리겠다"고 밝혀 발표가 임박한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