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동원아이팜 물류창고에서 본 에이엠알랩스의 '제약 유통 자동화'
자율주행로봇 25대 투입…배송시간 최대 1시간20분 단축
좁고 복잡한 'K형 창고'가 되레 무기로…에이엠알랩스, 현장 검증 발판 삼아 해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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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를 끌던 시절엔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었는데, 지금은 10~15m 구간만 오가니 다리가 훨씬 편해요."
18일 경기 김포시 고촌읍 동원아이팜물류센터. 약 600평(1980㎡) 창고에서 "이동 중입니다"라는 안내음이 들리더니, 성인 허리 높이에 바구니 9개를 얹은 물류로봇이 빠르게 지나쳐 갔다. 센터장인 하경태 이사는 "예전에는 수동 카트를 끌고 창고 전체를 S자로 돌아야 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정밀도와 엄격한 이력 추적성이 요구되는 이 제약 물류센터에서 사람과 함께 일하는 자율주행로봇은 모두 25대다. 자율주행 물류로봇(AMR) 강소기업 에이엠알랩스가 납품한 제품으로, 로봇들은 렉과 렉 사이를 오가다 약을 다 채우면 제자리로 돌아왔다. 로봇이 멈춰 서는 자리는 '피크존'이라 부른다. 작업자, 이른바 '피커' 17명이 구역마다 배치돼 걸음을 던 대신 약을 담는 손끝의 정확도에 집중한다. 큰 약은 별도 카트로 나누고 주문 빈도가 낮은 구역은 사람이 맡는 세밀한 분업도 눈에 띄었다.
작업의 출발점은 손바닥만 한 '태그' 한 장이다. 약국이 주문을 넣으면 물류 시스템을 거쳐 태그가 발행되는데, 약품명·구역·수량은 물론 검수용 무게 정보까지 담긴다. 태그를 로봇 거치대에 최대 9개까지 꽂고 출발 버튼을 누르면 로봇은 스스로 경로를 그려 피커 앞에 선다. 피커가 약을 스캔해 담고 터치 한 번으로 로봇을 다음 코스로 보내면, 마지막 품목을 스캔하는 순간 거래명세서가 자동 출력된다.

이는 고정식 컨베이어나 바닥 QR코드가 필요한 전통적 자동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다. 박승 에이엠알랩스 대표는 "자체 개발한 라이다(LiDAR)와 3D 비전 센서 기반 SLAM(동시적 위치추정·지도작성) 기술을 탑재해, 폭 2m 이내 협소한 랙 공간에서도 바닥 공사 없이 로봇 간 교차 주행과 정밀한 장애물 회피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또 업계 최초로 정밀 중량 측정 모듈을 AMR에 탑재해 피킹 정밀도를 확보했고, RFID 검수로 오피킹률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낮췄다. 하 이사는 "수작업 대비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됐고, 출고 대기시간을 최대 1시간까지 단축했다"고 말했다.
동원아이팜이 로봇 도입을 검토한 것은 심각한 인력난 때문이었다. 매립지 위 물류단지라 교통이 불편한 데다, 인근에 마켓컬리·이마트·롯데 등 대형 물류센터가 들어서며 일손이 그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무게를 45㎏으로 줄인 수동 카트를 들였지만 작업자의 근골격계 질환을 막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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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표도 촘촘했다. 낮 12시부터 발주가 시작돼 오후 2시까지 들어온 주문을 3시에는 약국으로 실어 보내야 했다. 늦으면 배송 기사들이 교통체증에 걸려 다음 날 새벽 배송까지 연쇄로 밀린다. 3시 마감은 어길 수 없는 선이었다. 문제는 통로였다. 렉과 렉 사이 폭이 1.7~2m에 불과한 데다, 취급 품목이 2만여 종에 이르는 소량 다품목 고정밀 구조였다.
처음 검토한 '오토스토어' 방식은 정해진 범위에서 정해진 속도로만 움직여 물량이 폭증할 때 탄력성이 떨어졌다. 여러 대기업·중견기업 대안도 지게차용 3m 통로가 필요해 맞지 않았다. 결국 좁은 통로에서도 달리는 원천 기술을 가진 에이엠알랩스를 택했다. 오기열 동원아이팜 대표는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두고 도입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국내 물류 현장 상당수가 'K형 창고'라고 했다. 미국·유럽 대형 센터가 넓은 부지와 반듯한 통로를 전제한다면, 국내 유통 물류는 비싼 땅값과 영세한 규모 탓에 공간을 촘촘하게 쓴다. 그는 "열악한 조건에서 로봇을 운영할 수 있어야 납품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역설적으로 이 좁은 통로는 대기업이 손대지 않은 틈새였다. 박 대표는 2024년 11월부터 동원아이팜 발주와 함께 배송 데이터로 시뮬레이션을 수백 번 돌렸고, 2025년 4월 계약 이후 로봇을 2대에서 13대, 25대로 단계적으로 늘리며 현장에서 검증했다.
성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배송 출고 대기 시간이 원거리 배송은 최대 50분, 근거리배송은 최대 1시간 20분 단축됐다. 로봇은 배터리만 갈아 끼우면 온종일 달렸고, 물량에 따라 한가할 땐 20대, 바쁠 땐 30대를 돌리는 탄력 운용도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약 위치를 익히는 데 최소 1년이 걸리던 숙련의 벽이 사라졌다. 로봇이 위치를 알려주니 초보자도 곧바로 투입할 수 있다. 잔업이 줄자 직원들 표정이 밝아졌고 퇴사자가 눈에 띄게 줄었으며, 아르바이트 인력이 먼저 정규직 전환을 요청하기도 했다.
에이엠알랩스는 이 경험을 화장품·의류 등 소량 다품목 업종으로 넓히고 있다. 박 대표는 "카페 원부자재 유통기업 A사에 F&B 풀필먼트용 AMR을 공급했고, 최근엔 아랍에미리트(UAE)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원아이팜 프로젝트는 가장 까다로운 정밀 물류 현장에서 압도적 성능을 입증한 사례"라며 "좁고 복잡한 창고라는 제약을 오히려 무기 삼아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기술로 키우겠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