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혈관·수면 왕관·AI 통증 진단…실험실 딥테크, 시장 문 두드리다

3차원 혈관·수면 왕관·AI 통증 진단…실험실 딥테크, 시장 문 두드리다

제주=류준영 기자
2026.09.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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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제4회 메디테크' 제주서 개막…바이오·헬스케어 분야 딥테크 스타트업 IR 발표 현장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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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헬스케어 딥테크 스타트업 IR 현장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바이오·헬스케어 딥테크 스타트업 IR 현장 모습/사진=류준영 기자

초대형 화면에 '3차원 혈관' 영상이 떠오르자, 객석 앞줄에 앉아 있던 심사역들이 일제히 노트북에서 눈을 떼고 화면을 올려다봤다. 초음파가 보여주는 회색조 영상 아래로 실핏줄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살아난 모세혈관 지도가 펼쳐졌다.

발표에 나선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원 창업기업 '비달소닉'의 양준모 대표(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기존 내시경은 아무리 확대해도 점막 아래 혈관까지 볼 수 없지만, 저희 솔루션은 혈관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초록빛 조직 사이로 붉은 실핏줄이 입체적으로 떠오르자 객석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의료기기·헬스케어 분야 기술사업화와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위한 '2026 제4회 메디테크(MEDITEK)'가 9일 제주 메종글래드에서 사흘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이날 오후 열린 바이오·헬스케어 딥테크 스타트업 IR에는 UNIST를 비롯해 광주과학기술원(GIST),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스텍(옛 포항공대) 등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 태동한 교원·학생 창업기업이 대거 무대에 올랐다. 발표자 대부분은 실험실에서 논문과 특허를 쌓아온 연구자 출신이었다.

하지만 객석의 심사역들은 기술의 완성도에만 주목하지 않았다. 시장 규모와 진입 속도, 규제의 벽은 물론 임상에 드는 기간과 비용까지 기술사업화 과정에서 맞닥뜨릴 현실적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한 공간에 마주 앉은 두 집단 사이에는 발표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이오·헬스케어 딥테크 스타트업 IR에서 한 심사역이 질문을 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바이오·헬스케어 딥테크 스타트업 IR에서 한 심사역이 질문을 하고 있다/사진=류준영 기자

비달소닉은 빛과 소리를 결합한 광음향(光音響) 영상 기술을 초음파 미니 프로브에 융합한 비침습 진단기기를 선보였다. 2023년 8월 설립 된 이 회사는 창업 첫해 개발한 프로토타입을 이날 무대에 올렸다. 양 대표는 식도·위 등 소화기관은 형태가 일정하지 않아 MRI·CT·초음파 같은 전신 영상 장비만으로는 진단에 한계가 있다는 점부터 짚었다. 그는 기존 내시경의 한계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양 대표는 "확대 내시경도 해상도가 제한적이어서 점막 아래 혈관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초음파 내시경은 조직의 깊이는 파악하지만 암 발생의 핵심인 혈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해 양성과 악성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해법은 혈관 형상 표현에 강점이 있는 광음향 기술을 초음파 미니 프로브에 결합한 것이다. 초록빛 초음파 영상이 조직의 밀도를 보여준다면, 그 아래 광음향 영상에는 3차원 모세혈관 구조가 세밀하게 나타났다. 양 대표는 "암이 생기면 혈관 신생과 전이가 먼저 나타난다"며 "의사가 놓칠 수 있는 조기 징후를 혈관 정보로 앞서 찾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체외진단 기기에 머물러온 기존 광음향 스타트업과 달리, 내시경에 초점을 맞춘 세계 최초의 회사"라며 다수의 특허와 자체 생산 전략도 소개했다.

발표를 지켜보던 미래과학기술지주의 한 심사역은 기존 진단기기와 견줘 진단 정확도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물었다. 양 대표는 "기존 확대 내시경으로는 모세혈관까지 볼 수 없지만, 우리 데이터는 이미 이를 가시화하고 있다"면서도 "결국 의사가 현장에서 쓰게 만들려면 기술적 근거 못지않게 비용이 현실적인 관문"이라고 솔직히 인정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GIST 교원창업기업 테디메디의 김태 대표는 불면증 환자를 진료하던 정신과 의사 출신이다. 그는 "환자를 보면서 부딪힌 문제를 풀 방법이 없어 직접 창업에 뛰어들었다"며 이마에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 '수면 왕관'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병원을 찾는 불면증 환자는 빙산의 일각일 뿐, 그 아래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참고 견디다 잊기를 반복한다"며 "병원에 오는 분은 어떻게든 도울 수 있지만, 오지 않는 분들을 도울 방법이 없다는 게 현실"이라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불면증의 원인에 대해 "수면 신호가 약해 잠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 신호가 지나치게 강해 잠들기 어렵다"고 했다. 수면제가 각성 신호와 함께 수면 신호까지 억눌러 정상 수면 구조를 흐트러뜨리는 반면, 테디메디는 수면 신호를 선택적으로 강화한다는 설명이다.

김 대표는 "약물 없이, 잠들기 위한 부가적인 노력 없이, 교체할 부품 없이"라는 세 가지 제품 원칙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발표 닷새 전 정신의학 분야 상위 1% 저널인 '몰레큘러 사이키아트리'에 논문 게재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5년에 걸친 연구의 결실이다.

임상 결과도 제시했다. 무작위 대조 임상에서 불면 심각도는 26%, 수면 불편 지수는 약 30% 줄었고, 잠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6.6분 단축됐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특히 "진짜 기기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상태에서도 치료군이 대조군보다 8.4분 더 빨리 기기를 벗고 잠들었다"며 "그만큼 빨리 졸음을 느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표를 주의깊게 듣던 한 심사역은 "수면 유도제처럼 빨리 잠들게 하는 것과 지속적인 불면증 치료는 다른 문제 아니냐"며 "동물실험에서 3시간 조사한 결과가 사람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점을 입증했느냐"고 물었다. 김 대표는 "사람의 뇌 안에서 아데노신을 직접 측정한 연구는 아직 세계적으로 없다"고 과제를 인정하면서도 "아데노신 수용체 점유율로 간접 확인했고, 동물실험과 임상 데이터로 효과를 입증했다"고 답했다.

KAIST 학생창업기업 제오코트는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할 때 쓰는 '세포 배양 플레이트' 시장을 겨냥했다. 박성현 대표는 용매를 쓰지 않는 기상증착(iCVD) 방식으로 표면을 처리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포스텍 창업기업 애드믹바이오는 간암 항암·재생을 위한 3D 바이오프린팅과 장기 유래 바이오잉크를 앞세웠다. 세계 최초 하이브리드 프린터 '오감프린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에 실증용으로 제공됐고, 제약사 머크와 공급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IR 발표를 지켜본 용홍택 메디테크 조직위원장은 "오늘 발표한 기술들은 하나같이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준이지만, 결국 관건은 실험실의 성과를 얼마나 빠르게 사업화로 연결하느냐"라며 "메디테크가 그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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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영 기자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미래사업부) 차장 ·한국과학기자협회 이사 ·카이스트 과학저널리즘 석사 졸업 ·한양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2020년 대한민국과학기자상 ·(저서)4차 산업혁명과 빅뱅 파괴의 시대(공저, 한스미디어) ■전문분야 -벤처·스타트업 사업모델 및 경영·홍보 컨설팅 -기술 창업(후속 R&D 분야) 자문 -과학기술 R&D 정책 분야 컨설팅 -과학 크리에이터를 위한 글쓰기 강연 -에너지 전환, 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자문 -AI시대 기술경영 및 혁신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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