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세수, 미래대응기금·국부펀드 나눠 담자]③ 1969년 석유 발견, 27년 지나 첫 자금 적립…미래 세대 위한 국부 축적
22조 크로네 굴리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68개국·7000여개 기업 분산투자

노르웨이는 1969년 북해에서 석유가 발견됐지만 그 수익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그 대신 법을 만들어 석유 수입을 국부펀드인 정부연기금 글로벌(GPFG)에 쌓기 시작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운용자산 22조6830억크로네(약 3296조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의 탄생이다. 이 과정에서 미래 세대를 고려했고 원칙있게 투자처를 골랐다.
3000조 굴리고, 연 3%만 꺼내 쓴다
노르웨이 국부펀드 운용자산은 내년도 우리나라 예산(821조원)의 약 4배, 미래대응기금(162조원)의 약 20배에 이른다. 올해 3분기에는 글로벌 금리 인상으로 채권 가격이 폭락하며 2780억크로네(약 39조원) 손실을 봤지만, 상반기까지 1조7530억 크로네를 벌어 반기 기준 사상 최대 수익을 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성공은 석유 수입이 많았다는 사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1990년 펀드 설립 이후 첫 자금이 들어온 1996년까지 기다렸다. 석유를 발견한 1969년부터는 27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자산 축적에 나선 셈이다. 석유가 고갈된 이후에도 국가의 부를 유지하고 미래 세대와 나누겠다는 장기적인 목표가 출발점이었다. 노르웨이는 돈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사용하는 원칙까지 정했다.
석유·가스 사업에서 발생하는 순현금흐름을 국부펀드에 이전하고, 정부가 펀드에서 가져오는 재정 자금은 장기 기대수익률인 연 3% 수준에 맞추도록 했다. 이른바 '3% 재정준칙'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평상시에는 위기 대응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실제 인출 규모를 펀드 자산의 2.7% 안팎으로 유지한다. 이 펀드는 올해 노르웨이 공공지출의 약 4분의 1을 떠받친다. 경기 침체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유연하게 대응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펀드의 실질가치를 보존해 미래 세대에 부를 물려주는 구조다.
세계 7000개 상장사 골라 '윤리투자'
운용은 중앙은행 산하 노르게스은행투자운용(NBIM)이 맡고 재무부가 위임 범위를 정하고 의회가 큰 틀을 감독한다. 돈은 전 세계에 분산돼 있다. GPFG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주식 72.1%, 채권 25.8%, 비상장 부동산 1.6%, 비상장 재생에너지 인프라 0.5%에 자금이 들어갔다. 현재 7077개 상장기업에 투자했다. 전 세계 상장기업의 약 1.5% 지분을 보유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큰손이다.
투명성도 특징이다. 독립 기구인 윤리위원회가 인권침해·분쟁 연루 기업 등을 걸러내는 '윤리 투자'로도 알려졌다.국부펀드는 인권 침해와 부패, 심각한 환경 훼손 등에 연루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배제한다. 독립적인 윤리위원회가 기업의 행위를 조사하고 투자 배제를 권고하면 중앙은행 이사회가 최종 결정하는 구조다. 투자 수익뿐 아니라 자금이 어디에 흘러가는지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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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국가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국부펀드를 활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기금(PIF)은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관광·첨단기술·인프라 등 국내 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자산의 약 80%를 국내 '비전 2030' 대형 프로젝트에 투입해 해외에만 투자하는 노르웨이와 대조된다. 싱가포르는 국가 자산의 장기적인 구매력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결국 미래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자금인지, 장기적인 국가 자산을 축적하기 위한 투자 기금인지에 따라 운용 방식과 성과 평가 기준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노르웨이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는 것보다 그 돈을 당장 쓰고 싶은 유혹을 통제하고, 세대를 넘어 지켜갈 운용 원칙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