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위 사람들은 환헤지 통화옵션상품(키코) 가입으로 고생하는 나에게 "잘 극복하면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키코사태 이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을 보면 '좋은 경험'으로만 넘기기엔 아픔이 크다.
1999년 창업 이후 휴대폰카메라를 제어하는 프로세서(CCP)를 개발해 해외 유수 경쟁사들을 제치고 세계 1위 점유율을 달성했다. 회사는 휴대폰 카메라프로세서 분야에서 확보한 글로벌 경쟁력을 앞세워 2004년 코스닥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했다.
이후 카메라프로세서에 이어 동영상과 MP3 등 다양한 미디어기능을 휴대폰에서 지원하는 멀티미디어 프로세서(MMP)분야에 진출하는 등 남다른 노력으로 국내 반도체 개발(팹리스)분야 수위 자리를 이어갔다. 이런 회사가 2008년 키코에 가입하면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게 됐다.
키코에 가입한 3년 동안 상상할 수 없는 혹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키코로 인해 730억원이라는 손실과 함께 1000억원 상당의 기회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과거 3년을 '잃어버린 3년'이라고 생각한다.
키코에 가입한 회사들 중 대책을 강구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업이 키코에 속수무책이었다. 키코는 매우 복잡한 금융공학 논리로 만들어진 정교한 상품이기 때문이었다. 은행 측은 불가항력적인 처지만을 내세우고 진지하게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없었다.
키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키코 가처분소송을 진행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이 계속 지연되고 고객사들의 우려가 높아지자 소송을 철회했다. 그리고 은행 측이 해결책으로 제안한 패스트트랙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역시 회사에 도움을 주기보다 회삿돈을 서서히 은행으로 옮겨 은행 측의 손실을 더욱 안전하게 보전하는 역할을 했다. 은행에 160억원을 지급하고 패스트트랙에 가입했다. 창업 이후 가장 많은 현금이 일시에 외부로 빠져나간 상황이었다.
가입 이후에도 부채가 계속 불어나고 재무구조는 키코로 인한 빚을 그대로 떠안아야만 하는 처지다. 더욱이 패스트트랙 이후에도 회사는 여전히 신용등급이 강등된 상태였다. 은행은 패스트트랙 가입을 독려한 책임자를 보직이동하면서 그동안 논의해온 내용을 원천적으로 제거했다.
인생을 돌아보니 가장 험난했던 3년이 지나간 것 같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길게만 느껴진 3년이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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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지난 3년 동안의 수없는 의심과 의혹에서 벗어나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는 여전히 어렵지만 과거 3년과는 구분되는 것이 있다. 더이상 키코로 인해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 한다.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시간을 좀 더 효과적으로 회사 정상화를 위해 사용하려고 한다. 올해 회사가 다시 살아나고, 내년부터 큰 수익을 내는 회사가 될 것이라는 자신도 생겼다.
국내 최대 팹리스 기업으로서의 위상도 되찾고, 2016년에는 세계 10대 팹리스 기업에 오를 것이라는 목표도 마련했다. 대기업보다 더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어 고락을 함께한 옛 동료들이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건실한 중견·중소기업들에 크나큰 아픔을 안겨준 키코의 진상은 언젠가 밝혀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시점은 회사가 글로벌 팹리스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그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