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정전보상 피해 접수처 294개 오픈...메기 1.5만마리 폐사 등 545건 접수

한국전력(49,150원 ▲850 +1.76%)이 울상을 짓고 있다. 지난 15일 발생한 전국적 정전사태의 피해 보상을 앞두고서다. 한전은 20일 오전부터 정전사태 피해자들로부터 보상 신청을 받고 있지만, 꺼림칙한 분위기다.
21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한전은 당초 '전기공급약관'에 있는 면책조항에 의거, 이번 정전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없기 때문에 보상 의무가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약관엔 한전의 '고의'나 '중대결함'이 인정될 때만 보상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19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이 보상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전과 발전자회사들이 책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정부가 보상 책임을 한전에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이 전력 송배전 책임을 지고 있지만, 이번 정전사태가 한전의 기술적 문제나 중대결함에 의해 발생했는지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백 억 원에 달하는 금전적 책임을 묻는 건 문제라는 것이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소속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은 중소기업청 자료를 인용, 지난 20일 기준 중소기업 피해액을 301억9100만원(4558개)이라고 밝혔다. 또 피해보상 접수 첫날 한전 등엔 60억 원(545건)에 이르는 피해보상 신청이 있었다.
신중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기술적으로 중대한 문제를 일으켜 정전사태를 불러왔다면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아직 책임소재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전보고 보상을 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기업 경영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렴한 전기요금 탓에 적자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전에게 재무적 부담을 줘 결국 전기요금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강희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로부터 가격 통제를 받고 있는 한전에게 정전사태를 책임지라고 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전에 책임을 물어야 하나. 정부가 보상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정전사태로 전력수급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 장기적으로 전기요금 조정에 당위성이 높아졌다"며 "특히 계속 빚을 지고 있는 한전에게 보상 책임마저 지라고 하면 요금인상 부담을 더 느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더 큰 문제는 한전 주주들이 또 소송을 걸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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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은 전기 원가보상율이 90%에 머물러,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실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08년 영업적자로 돌아선 뒤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 적자만 6조1000억 원에 이른다. 한전 소액주주들은 전기 요금을 올리지 못해 적자를 냈다는 이유로 지난달 김쌍수 전 한전 사장을 상대로 2조9000억 원 규모의 집단소송을 냈다.
한편 전날 정전피해 신고센터엔 다양한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충남에 있는 A업체는 지난 15일 오후 4시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공장 기계가 멈춰 생산 중이던 전선 제품에 불량품이 발생했다고 한국전력 충남 지사에 피해 신고를 했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충북 소재 메기 양식장에선 치어 1만5000마리가 떼죽음을 당하는 피해를 입어 역시 인근 한전 지사에 보상을 요청했다.
이밖에 양계장에 전력이 끊겨 닭이 폐사했다는 내용과, PC방에 전력이 끊겨 고객에게 환불해 준 요금을 보상해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공장에 전력이 끊겨 납품에 차질이 생겼다는 사례와 컴퓨터 등 전자제품 고장으로 피해를 봤다는 신고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