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번 먹자"했더니 고딩부터 50대아저씨까지…

"밥 한번 먹자"했더니 고딩부터 50대아저씨까지…

배현정 기자
2012.05.11 09:33

[머니위크 커버]소비의 혁신 '쉐어링'/ 밥상 공유하는 '집밥'

값비싼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 직장인, 엄마의 손길이 그리운 자취생들에게 하루라도 '집밥'의 감성을 전달하면 어떨까. 바쁜 업무에 쫓겨 대충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오손도손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는 밥상을 마주할 있다면?

최근 '쉐어링'의 시각으로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집밥'에도 공유의 모델이 등장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로 개념 또한 시시각각 변모중인 진행형상태이지만,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2월 강남의 한 사무실. 직장인 10여명이 '옆집 할머니가 정을 담뿍 담아 만들어준 카레라이스'를 나눠먹는 점심시간이 마련됐다. 한 자취생이 이따금 반찬을 얻어먹는 인심 좋은 옆집 할머니에게 부탁해 준비한, 소박하지만 특별한 점심이었다.

이날 일일쉐프로 초대된 할머니는 젊은 시절 식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다. 그런 할머니에게 이날의 경험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할머니는 젊은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낀다며 흐뭇해했다.

사진 류승희기자

이날 '할머니표 카레'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옆집 처녀인 박인(26) 씨. 그녀는 이후로도 '옆집 나물밥', '블로거 정유정의 토란탕' 등 주부나 예비 창업가들을 일일쉐프로 초대하고, 트위터나 블로그로 함께 식사를 희망하는 이들을 맺어주는 장을 마련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밥 한번 먹자'는 얘기는 의미가 남다르잖아요. 배고프고, '사람 고픈' 이들에게 집밥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씨는 한국으로 '유학'을 온 고등학교 이후 긴 자취생활을 했다. 대부분의 음식을 사먹거나 혼자서 해결하다보니 엄마가 집에서 해주는 집밥이 그리웠다.

박씨가 소셜 다이닝 '집밥'을 열게 된 이유다. 직원도, 식당 공간도 따로 없는 1인 기업. 그때그때 다른 주제와 메뉴의 식사자리를 기획하고, 식당(장소)을 섭외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방식. 가격은 메뉴에 따라 몇천원에서 몇만원까지 그때그때 달라진다.

아이디어는 선진국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집밥'을 배달하거나 집에 초대해서 함께 먹는 사업이 이미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다. 이를테면 3인 가족이 3인분의 음식만 준비하는 게 아니라 5인분, 7인분씩 차려서 이웃과 함께 먹거나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다. 비록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원하는 메뉴를 공동 예약해 함께 모여 식사하게 하는 서비스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선 이러한 서비스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주부나 예비 창업가들을 일일쉐프로 초대하고, 장소를 섭외해 식사 신청자들을 모으는 행사 등이 식품위생법 등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 이에 최근에는 공유의 개념을 '집밥'에서 '가치'를 함께 나누는 식사로 전환했다. '창업' '인도문화' '채식' 등 관심 있는 주제를 내걸고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른바 소셜 다이닝이다.

사진 류승희기자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모델은 집에 초대해 함께 나누는 식사입니다. 그러나 꼭 집이 아니더라도 더불어 밥을 먹는 경험을 공유하는 것 그 자체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단 물질적인 공유뿐 아니라 비물질적인 경험과 소통을 상품화하는 것, 진화하는 '공유경제'의 한 갈래로 접근한 것이다.

지난 4월 말까지 이제 막 세 차례의 소셜 다이닝이 진행됐지만, 반응이 뜨거운 편이다. 특히 지난달 중순, 서울 홍대 인근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예비 창업가들을 위한 저녁식사'에는 문의가 잇달았다. "등록 확인은 어디서 하는 건가요?" "약속장소로 가면 되지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신청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날 저녁 식사 자리에 모인 이는 모두 34명. 고등학생부터 40~50대 중년 아저씨들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이들은 모두 처음 만난 사이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관심사(창업)를 공유하다보니 이야기는 밤늦도록 끊이지 않았다. 박씨는 "공통의 관심사와 따뜻한 현미밥에 국 등으로 준비된 정갈한 식사가 어우러져 처음 본 이들도 서먹함없이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이러한 소셜 다이닝의 미래를 밝게 보고 있다. "우리나라 가구 4곳 중 1곳이 1인 가구잖아요. 매일 만나는 직장 동료나 지인이 아니라 새로운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죠."

함께 밥을 먹음으로써 영세 자영업자나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협력소비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 과연 1인 기업으로 수익성은 있을까. 그는 "현재 손실을 보고 있지 않다"며 수줍게 웃었다. 창업 전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유명 컨설팅회사에 다녔지만, 그는 "전혀 후회가 없다"고 말했다. 공유 경제를 실천하며 사람들을 맺어주는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네트워킹, 이것이 공유 경제의 참 매력이 아닐까요?"

☞ 본 기사는<머니위크>제22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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