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는 시작됐다

증세는 시작됐다

양영권 기자
2013.11.25 07:24

[우리가보는세상]

"한전 사장님이면서, '전기세'라고 그러니까……."

"착각했습니다. ('전기세'라는 발언을) 취소합니다. 제가 그걸 바꾸자고 한 사람인데……."

2008년 10월23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의 한국전력 등에 대한 국정감사. 김쌍수 당시 한전 사장이 '전기세'라는 표현을 계속 사용하자 지경위원장을 대리해 국감을 주재하던 김기현 의원이 정정해주는 장면이다.

전기를 사용하고 지불하는 돈은 '전기요금'이라고 해야 맞다. 하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전기료'나 '전기요금'보다는 '전기세'라는 말에 익숙하다.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한전의 최고경영자까지 헷갈릴 정도다.

포털사이트 국어사전에 세금은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가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국민이나 주민으로부터 강제로 거두어들이는 금전이라고 정의가 돼 있다. 전기요금을 결정해 거둬들이는 게 정부와 공기업이고, 전기가 현대인에게 공기와도 같은 필수재이기 때문에 '세금'과 다름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리라.

오히려 전기요금이 세금보다 더 무섭다는 사람도 있다. 이강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해 말 지식경제위원회 회의에서 홍석우 당시 지경부 장관에게 "세금이랑 똑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에 ('전기세'라는 표현을 쓴다), 사실 세금보다 더 무섭다"며 "세금이야 좀 어영부영하면 안 낼 수도 있는데 전기세는 안 내면 당장 끊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런 전기요금이 지난 19일 평균 5.4% 인상됐다. 산업용 전기료 인상률은 6.4%다. 전기요금은 최근 2년3개월간 5차례 올랐는데,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하는 '수요관리' 차원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전기가 생산 요소로 취급되는 산업계에서는 전기요금이 올라간다고 해서 사용을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생산요소 투입을 줄이면 그만큼 매출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을 늘리면 다른 분야의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9일 한국미래소비자포럼의 행사에 나온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에 대한 과세 등에 따른 세수 증대분을 법인세나 유류세 인하로 반영해 전체적인 세수를 중립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기료 인상은 기업들에게 더해진 부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 관세혜택 폐지 등 '기업 쥐어짜기'는 범정부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증세'는 없다지만, 사실상 '증세'와 다름없는 조치들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는 좋은 조세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명확성의 원칙을 들었다. 납세 방법과 시기, 금액 등이 간단하고 명료해야 하며, 징세자의 의사에 따라 바뀌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부처가 겉으로는 증세에 반대하면서 '사실상의 세금'을 더 걷는 일에 팔을 걷고 나섰다면 좋은 제도를 갖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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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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