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때가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4·19가 나던 해 세밑/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반갑게 악수를 나누고/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하얀 입김 뿜으며/열띤 토론을 벌였다.'로 시작하는 시인 김광규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다.
시인과 그 친구들처럼 94학번들도 지난 주 금요일 서울 서교동의 한 음식점에서 송년회를 가졌다. 같이 학교를 다닌 32 명 중 절반 가까운 15 명이 참석했다. 높은 출석률은 아마도 TV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의 인기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명함을 교환하고, 직장을 물으며 연봉을 떠올리고, 처자식의 안부와 외국에 나가 있는 다른 동기의 근황을 물었다. 회비를 걷고, 달라진 전화번호를 스마트폰에 저장했다. 두 살 더 많은 여자 동기는 늦은 결혼 소식을 알렸다. 시인과 그 친구들처럼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떠도는 얘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비싼 안주를 남기고 헤어졌다.
20년간 그들과 세상은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응답하라 1994는 재미있는 드라마지만, 1994년에 대해 거의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94년 대학 새내기들은 김일성 사망 소식에 불안했으며, 세상은 우르과이라운드와 박홍 신부의 주사파 발언에 어수선했다. 장성택 처형과 '종북', 민영화 논란이 신문 지면과 포털의 뉴스 페이지를 장식하는 2013년은 94년에 대한 리메이크 영화처럼 닮았다. 이제는 손으로 쓴 낯익은 대자보까지 등장했다.
서울에 아파트는 2배는 더 지어진 것 같지만 여전히 우리는 집 걱정을 해야 하고, 대기업은 몇 배나 돈을 더 잘 벌지만 취업은 더 어려워졌다. 삐삐가 스마트폰으로 진화했지만, 소통은 그 때만큼 힘들다. 그리고 4·19가 나던 해 세밑처럼 정치인들을 안줏거리로 올린다. 바뀐 건 연말이 되어도 더 이상 돌돌 말은 달력을 끼고 나타난 사람이 없다는 것.
국민학교(초등학교) 때는 반공 대회에 나가기 위해 웅변학원에 다녔지만, 중·고등학교 때는 전교조 선생님들의 수업을 들었던 그들. 대학 때는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세계철학사'가 아니라 이진경의 '철학과굴뚝청소부'로 진리를 고민하고, 마르크스와 헤겔 대신 푸코와 데리다라는 이름이 친숙했던 이들.
학교 앞에 들어선 맥도날드에 돌을 던졌다던 어떤 선배의 용기를 이해하지 못했던 세대. 많은 변화를 겪었던 만큼 다를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아직 세상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그리고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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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지만, 바람이 몇 개 남지 않은 플라타너스 가로수 잎을 흔들며 얘기하는 게 귓전으로 들려왔다. '안녕들 하신가. 안녕들 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