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저가항공 '대리사과' 뒤에 숨은 '관치'

[기자수첩]저가항공 '대리사과' 뒤에 숨은 '관치'

양영권 기자
2016.01.29 05:45

27일과 28일에 걸쳐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진에어 등 국내 저비용 항공사(LCC)의 홈페이지에 사과문이 올라왔다. 지난 23일 제주에서 발생한 32년만의 기록적인 폭설과 강풍으로 대규모 결항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을 표하는 내용이었다. 제주공항을 취항하는 LCC는 모두 사과문을 게재했다. 양대 국적항공사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내 LCC 업계가 사상 초유의 '사과 공조'에 나선 것은 정부의 입김 때문이다. 복수의 LCC 관계자는 "국토교통부 측에서 사과문 게재를 요구해 와 게재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결항 사태가 벌어진 제주공항이나, 공항을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의 홈페이지에서는 일절의 유감 표명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25일 올라 온 '악기상으로 인한 활주로 폐쇄(제주공항) 관련 주차료 특별면제계획 알림'이라는 안내문만 있을 뿐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온전히 LCC들에게 묻기에는 무리가 있다. LCC들이 대기표를 배부해 공항이 아수라장이 됐다는 게 논란이 됐지만, 이는 승객을 분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반론도 있다. 비행기 운항에 있어 안전 사고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반면 이용객들로부터 1인당 4000원의 공항 이용료를 받고, 항공사들로부터 각종 사용료를 받는 제주공항 측에서는 음식 수급이나 난방 공급 등과 관련한 미숙한 조치로 구설에 올랐다.

특히 제주공항이나 공항공사는 이런 사태에 대비한 변변한 매뉴얼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 '제주국제공항 비상계획'에는 '태풍, 호우, 강설, 지진 등 자연현상으로 인해 공항운영 및 항공기 운항이 저해되는 경우'를 자연재해 상황으로 규정했지만 체류객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공항운영규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니 LCC 업계에서 "정부와 공항공사가 자신들의 책임을 가리기 위해 LCC의 책임으로 몰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공항공사는 인천공항을 제외한 김포 김해 제주 대구 광주 공항 등 14개 지방 공항을 통합 관리하는 국토부 산하 공기업이다. 영업이익이 2010년 540억원에서 2014년 2150억원으로 4배 정도 늘어났는데, 여기에는 이 시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한 LCC들이 톡톡한 기여를 했다.

'관'은 이번에도 비상사태 앞에선 속수무책이었고, 사후 처리에선 '나몰라라'였다.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돼 승객이 고립되면 도로공사의 책임이 큰가요, 고속버스 회사 책임이 큰가요" LCC 업계의 '이유 있는' 항변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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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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