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66)은 꼼수보다 정공법을 즐기는 타입이다. 물밑 논의의 역할을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공개적으로 터놓고 얘기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거의 유일한 대기업 총수다.
이런 기질이 잘 드러난 사례가 2015년 말 그가 두산그룹 회장이었을 당시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 사태다. 20대 고졸직원과 갓 입사한 공채 신입사원이 명예퇴직 신청자에 포함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자 박 회장이 직접 수습에 나섰다.
실무자를 내세워 적당히 해명하거나 그조차도 하지 않고 뭉개는 여느 총수들과는 확연히 다른 조치였다. 정작 본인은 어린 직원들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을 '죽음과 같이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하지만 두산의 이미지에 치명타가 될 뻔했던 사태가 제법 조기에 수습된 데 박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는 점에 이의를 다는 이는 거의 없다.
박 회장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장을 맡고 국회 문턱이 닳도록 정치권을 찾은 것도 이런 기질 덕이었다. 2013년 8월 대한상의 회장으로 선출된 뒤 국회 방문 횟수가 48차례에 달한다. 두달에 한번꼴이다. 하루에 주요 정당 인사를 다 만날 수 없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엿새에 걸쳐 국회를 찾은 적도 있다.
신임 국회의장이나 정당 지도부를 예방하는 형식적인 방문보다는 현안을 위해 국회 상임위원회까지 발품을 팔던 장면을 기억하는 의원들이 많다. 21대 국회 여야 지도부를 이끄는 원내대표들과도 이미 국회 상임위 활동 시절부터 수차례 얼굴을 맞댔다. 대기업 총수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노총과도 허물없이 호프미팅을 이어갔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박용만'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다.
국회 방문의 배경이 대기업 회장 출신답지 않게(?) 유독 신생 벤처·스타트업의 신사업 지원을 위해서였던 점도 '박용만다움'으로 회자된다. 낡은 제도에 막혀 젊은이들의 꿈이 꺾이고 사그라들 때 기성세대 선배로 너무나 부러끄러웠다며 울먹이던 장면이 당시 언론보도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핀테크나 공유경제서비스 같은, 세상에 나오지 못할 뻔했던 기술들이 결국 박 회장이 뒷받침한 민관 합동 샌드박스를 거쳐 빛을 봤다. 민간 샌드박스 채널 '대한상의 샌드박스 지원센터'가 지난해 5월 출범 이후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발굴한 혁신과제가 220여건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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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그의 소탈함과 배려, 남다른 소통이 배다른 형제들 사이에서 자란 가족사 때문이라고 한다. 아직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18살 시절 부친의 장례식이 끝난 뒤 이복 형, 고 박용곤 전 두산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너는 내 동생"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돌이키는 박 회장에게서 삭막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이야기를 떠올리긴 어렵다.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었고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결코 소탈해 보이려거나 기업 총수로서 고정관념을 깨려는, 준비된 행동은 아니었다."
박 회장은 오는 23일 사실상 대한상의 회장직을 내려놓는 서울상의 임시 의원총회를 앞두고 17일 출간한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에 이렇게 적었다. 그가 떠난 자리가 더 그리워질 글귀다.
퇴임 후 그가 근질거리는 손과 발을 어떻게 둘지 모르겠다. 다만 아쉬움을 달랠 건 그가 직접 설득했다는 후임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대감이다.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새로운 상의 회장의 건투와 함께 박 회장의 또다른 도전에 건승을 빌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