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싸더라도 업계 1위 기업을 사라는 게 원칙입니다. 싼 회사를 찾아 인수하다보면 탈이 납니다. 가격이 맞는다면 무조건 1등을 사야 합니다."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명실상부 SK그룹 2인자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대식 의장이 자신이 생각하는 M&A(인수합병) 원칙을 공개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영철학을 구현하고, SK그룹 딥체인지(근본적 혁신)를 위한 M&A를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조용한 카리스마'의 인물이다.
조 의장은 최근 그룹 내 일부 임원들과 온라인으로 미팅하고 "M&A를 할 때는 비싸더라도 업계 1위 기업을 인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8일 전해졌다. 시장에서 매수 의지가 있으며 성장성이 높은 업계 수위 기업을 인수해야 M&A 성공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조 의장의 그룹 내 비중과 그간의 커리어를 볼 때 의미심장하다. 조 의장은 SK(주) 사장으로 일하며 SK(주)를 투자전문지주사로 전환시켰다. 바이오와 반도체 소재, 친환경 미래에너지 부문에서 저돌적인 지분투자 및 M&A로 그룹의 영역을 크게 넓혔다. 섬유와 정유화학, IT, 배터리, 수소로 끝없이 변신하는 SK그룹의 색을 가장 잘 표현하는 CEO가 바로 조 의장이다.
조 의장은 또 그룹 멤버사 간 관계를 조율하며 대외 전략을 총괄하는 수펙스협의회 의장직을 맡으면서는 SK E&S의 수소사업 투자와 LNG(액화천연가스) 밸류체인 강화를 막후에서 설계했다. 해외 바이오 생산시설 인수와 에너지 투자, 베트남 투자 등의 밑그림도 직접 그렸다.
조 의장은 가장 인상적인 M&A 사례로 이차전지 핵심 소재인 동박 제조사 SK넥실리스(구 KCFT) 인수를 꼽았다. SKC가 2019년 인수했다. 조 의장은 "알짜 화학사업 지분을 팔고 새로운 사업을 해야 하느냐는 내부 반대 의사가 많았지만 지금 기업가치와 영업익을 보라"며 "임원들도 모두 본인이 하고 있는 일 외에도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갖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SK넥실리스는 글로벌 동박 점유율 15%의 선두업체다. 일본이 독점하던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지난해 7월엔 말레이시아에 새 동박 생산기지를 착공했다. SKC가 1조2000억원에 인수했는데, 만 3년도 되지 않아 시장서 5조원 이상의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난 9월 기업설명회에서 이완재 SKC 사장은 "SK넥실리스의 기업가치가 2024년까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독자들의 PICK!
조 의장은 SK넥실리스 인수 사례를 설명하며 임원들에게 "본인들의 업무가 5년 후에도 존재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적인 신사업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타진하라는 의미다. 같은 맥락에서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수소 이후 주력이 될 사업은 뭐냐"는 질문에 "10년 후 그룹 전체 포트폴리오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 의장은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빅립'(Big reap, 더 큰 수확)에 대해서도 집중해 줄 것을 당부했다. 조 의장은 "계열사별로 파이낸셜스토리 수립을 삼 년 째 얘기하고 있는데 이제 여기서 수확을 내고 그 수확을 측정할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를 본격적인 파이낸셜스토리 현실화의 해로 간주하고 자본시장에서 각자 기업가치를 충실히 인정받으라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