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라는 국가와 중국이라는 시장은 개념적으로 분리해서 사고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분리해서 대응하기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패권다툼을 벌이고 있는 적으로서의 중국과 경제적 상호의존관계로 얽혀 있는 시장으로서의 중국을 보다 구분하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트럼프정부 시절부터 중국을 세계의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디커플링 전략을 추구해 왔다. 중국 제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물리고, 화웨이·ZTE와 거래를 막았다. 바이든 정부는 한국·일본·대만과 '칩4 동맹'을 맺고 첨단 반도체 제품과 장비의 중국 반입을 금지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만들어 중국 배터리 기업을 견제했다.
그러나 지난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즈음해 기류가 바뀌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디리스킹(위험제거)'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6월 CNN에 출연해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최근 방중한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디커플링은 재앙"이라고 말했다.
이는 지난해 사상최대를 기록한 미중교역에서 보듯 중국을 단번에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한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공급망 구축은 비용을 수반하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는 미국의 노력과 배치된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히 엮인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의 이해관계도 염두에 둬야 했다. 기조는 그대로 두되 강도와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장 미국기업의 이익과 상충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등이 올 들어 잇따라 중국을 찾았다. 중국시장과의 단절은 매출과 이익 감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지난 17일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반복적이고, 광범위하며 모호한 규제는 미국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중국 정부의 보복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며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SIA는 인텔, 엔비디아, 퀄컴 등 미국 기업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을 회원사로 둔 곳이다.
같은 날 인텔의 팻 겔싱어, 엔비디아의 젠슨 황, 퀄컴의 크리스티아노 아몬 CEO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대중 수출 규제가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이 갖는 선도적인 지위를 위협할 수 있다고도 했다. 미국이 고성능 컴퓨터용 반도체 등에 대해 추가적인 반도체 수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에 대해 반도체업계의 의견을 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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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뉴퍼 SIA 회장이 지난 5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말했듯 "중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퀄컴은 지난해 매출의 64%를, 인텔은 27%를 중국에서 거뒀다. 엔비디아는 20%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의 경우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낸드 2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중국 시장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우리에겐 그런 정도의 회복력이 없고, 대체할 수 있는 대상도 없다"고 한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최회장은 "미중 간 갈등을 계기로 정부가 기업 경쟁력 자체에 개입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며 "정부와 기업이 합쳐진 차원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미중 패권전쟁이라는 지정학적인 변수로 인해 안보와 경제가, 국가전략과 기업이익이 얽히고 설킨 세계에서 개별 기업이 아나라 정부와 기업이 원팀이 돼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것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의미다. 과거와 다른 '게임의 룰'에 맞추되 시장을 지키기 위해 줄타기를 하는 것, 그게 지금 시대의 생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