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대기업 대관업무 8년 차인 S부장은 가족들과 단풍 나들이를 해 본 적이 없다. 가을마다 찾아오는 국정감사 때문이다. 올해 온 나라가 들썩였던 최장 열흘 간의 추석 연휴 때도 여행은커녕 고향도 못 갔다. '1년 농사'에 정점인 국감을 준비하는 기업 관계자들의 사정은 대개 비슷하다. 특히 이번은 정권이 바뀌고 첫 국감이라 긴장감이 더했다.
그런데 비교적 무난히 넘어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갖가지 문제에 휘말려 거의 모든 상임위에 불려 나간 쿠팡을 제외하면 특별히 시달린(?) 기업도 찾기 어려웠다. 쿠팡은 최근 유통 최강자로 급성장했으나 그에 걸맞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탓에 빚어진 일이니 일반적인 경우로 치환할 수는 없다.
#재계가 분석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경주에서 한창 진행 중인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영향이 컸다. 초대형 국가 이벤트로 이목이 쏠리면서 국감 후반부에 집중도가 떨어진데다 상대적으로 반기업 정서가 강한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으로서 내놨던 의외의 배려도 작용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찌감치 '기업 대표의 증인 출석 최소화' 원칙을 세웠다.
실제 올해 국감에서는 망신주기식 기업 총수 출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나오긴 했지만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거니와 전통적 의미의 총수도 아니다.
나날이 극단적 대결 양상으로 치닫는 우리 정치의 덕도 봤다. '조희대(대법원장)와 김현지(대통령실 부속실장)'로 점철된 국감에서 기업 이슈는 묻혔다. 난장판 국회에서 기업이 한숨 돌리는 비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건 있다. 증인 채택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연도별 기업인 증인 채택 인원은 2020년 63명에 불과했으나 거의 매년 늘어 올해는 195명에 달했다. 불과 5년 만에 3배가량 늘어 역대 최고다. 부를 만해서 채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 부분은 일단 부르고 보자는 식이다. 압박용, 길들이기용이다. 온갖 생색을 내며 빼주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이 받는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상상 이상이다.
공수가 바뀐 이번 국감에서는 야당인 국민의힘의 태도 변화가 한몫했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APEC 일정을 최일선에서 챙겨야 할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국민의힘 의원이 마지막까지 증인 채택을 고집하다가 개막 행사 직전에야 철회해줬다. 기업을 위한다던 보수 정당이 야당 됐다고 기업인들 괴롭힌다는 성토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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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올해도 낙제점 국감이다. 통신 3사 대표들을 불러 해킹 피해를 따져 묻고 KT가 피해자의 번호이동 위약금을 면제토록 끌어낸 것 정도가 성과라고 할까.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갔을 뿐 재계 관계자들의 평가는 "기억에 남는 국감이 없다"고 할 정도로 최악이다.
글로벌 무대에서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기업들이 바라는 국감은 이제는 단어를 쓰기도 민망한 '정책 국감'이다. AI(인공지능) 대전환기에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비판할 건 비판하고 대책을 세우는 그런 자리다. S부장의 마지막 한마디가 가슴을 때린다. "진짜 국감을 보는 날이 오긴 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