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배터리 기업들이 실적 악화 속에서도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에 나섰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도 차세대 배터리 기술 선점을 놓치면 중국 업체에 시장 점유율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23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지난 3분기 누적 연구개발 투자액은 총 2조3206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9919억원)보다 16.5% 증가한 규모다.
가장 많은 연구개발비를 지출한 곳은 삼성SDI다. 지난 3분기까지 1조1016억원을 투자해 전년 동기(9861억원)보다 11.7% 늘었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도 11.7%로 가장 높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같은 기간 연구개발비로 9876억원을 투입해 전년(7953억원) 대비 24.2% 증가했다. 매출 대비 비중은 4.1%에서 5.6%로 상승했다. SK온 역시 연구개발 비용을 지난해 2105억원에서 올해 2314억원으로 9.9% 확대했다.
아직 실적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배터리사들이 연구개발비를 늘리는 건 차세대 배터리 선점에 실패할 경우 중국에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더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어서다. 올해 3분기 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한 삼성SDI(영업손실 5913억원)와 SK온(영업손실 1248억원)은 적자 기조를 이어갔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차세대 배터리 기술이 변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상황"이라며 "뒤처지면 몇 년 안에 시장을 완전히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현장에선 완성차업체(OEM)들이 배터리사에 차세대 기술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 일부 OEM은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해 안전성과 에너지 밀도를 높인 전고체 배터리 등 신기술 조기 상용화를 목표로 배터리사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GM과 합작한 얼티엄셀즈를 통해 미국에서 LMR(리튬망간리치) 기반 각형 배터리 양산에 나설 계획이다. 삼성SDI는 BMW와 전고체 배터리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중국 업체들도 공격적으로 투자를 이어간다. 전고체 배터리는 대부분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30년, 삼성SDI는 2027년, SK온은 2029년을 양산 시점으로 잡았다. 중국 CATL은 나트륨이온 배터리를 이르면 연말 중 양산할 계획이다. 나트륨이온 배터리는 리튬 대신 나트륨을 주로 활용해 원재료 수급이 용이하고, 가격 경쟁력이 우수하다.
각국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며 업계는 정부 차원의 세제 지원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한국판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와 관련한 내용은 내년도 세제개편안에서 제외됐고, 법안도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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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업계 관계자는 "적자 누적과 세액공제 실효성 부족으로 기업의 투자 여력은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