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이 9조원 규모 새만금 투자를 확정하며 향후 5년 동안 추진할 총 125조2000억원 규모 국내 투자의 '스타트'를 끊었다. 새만금은 신재생에너지가 풍부해 깨끗하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인 수소·AI(인공지능) 사업에 있어 최적의 입지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로 미래 신사업 주도권을 강화하는 한편 둔화한 국내 투자·고용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해 11월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 주요 그룹 총수들은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지방 산업 활성화를 위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고 주요 그룹은 대대적인 국내 투자계획 발표로 화답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5년 동안 국내에 총 125조2000억원의 사상 최대 규모 투자를 단행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AI·SDV(소프트웨어중심차량)·전동화·로보틱스·수소 등 미래 신사업 분야 50조5000억원 △기존 모빌리티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R&D(연구개발) 및 경상투자에 각각 38조5000억원, 36조20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세부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해 약 3개월 만에 이번 새만금 투자를 확정했다. 125조2000억원 규모 투자의 출발인 동시에, 지난해 국내 투자 계획을 밝힌 주요 그룹 중에서 첫 번째 사례가 됐다.
9조원 규모 새만금 투자는 총 50조5000억원의 '미래 신사업' 투자의 일부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수소 사업이다. 현대차그룹은 1조원을 투입해 200MW(메가와트) 규모 수전해 플랜트를 건설한다. 회사가 지난해 울산 수소연료전지 신공장 건설을 시작한 것이 이번 새만금 사업과 연결된다. 울산에서 만든 PEM(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기, 수소연료전지를 새만금 수전해 플랜트에 적용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향후 국내 수전해 플랜트를 총 1GW(기가와트)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라 새만금 외 다른 지역에도 플랜트를 추가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새만금에 조성할 AI 수소 시티에 대한 기대도 높다. 국내 수소 사업 성장이 더딘 이유로 '활용 사례 부족'이 꼽히기 때문이다. 국회수소경제포럼 대표의원인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토론회에서 "(수소 산업 육성을 위한) 전략으로서 제가 생각하는 모델은 하나의 도시를 수소 도시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4000억원을 투입해 AI·로봇·수소에너지 기술이 융합돼 완성형 산업 생태계를 이루는 AI 수소 시티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독자들의 PICK!
총 4000억원을 투입하는 로봇 제조 및 부품 클러스터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현대차그룹은 이곳에서 어떤 로봇을 생산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다만 휴머노이드 '아틀라스'와 4족 보행 로봇 '스팟' 관련 사업은 미국의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나믹스 중심으로 추진 중이고, 현대차그룹이 미국에도 로봇 공장을 짓기로 한 만큼 새만금에서는 다른 종류의 로봇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는 산업용 착용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 차세대 모바일 로봇 플랫폼 '모베드(ModED)' 등의 생산을 예상했다.

현대차그룹이 새만금을 미래 신사업 핵심거점으로 낙점한 이유로 수도권에선 찾기 힘든 '넓은 부지'와 함께 '풍부한 신재생에너지'가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에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장급 초대형 연산 능력을 갖춘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과 엔비디아는 지난해 5만장의 '블랙웰' GPU를 활용해 통합 AI 모델 개발·검증·실증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AI 데이터센터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릴 만큼 전력 소모량이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필수라는 점이다. 새만금은 태양광·풍력 등 총 10GW 규모 재생에너지 단지가 조성되고 있어 AI 데이터센터 입지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이후 새만금 육상 태양광 1구역에서 99MW 규모 태양광 발전시설 운영에 참여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GW급 태양광 발전 포트폴리오를 단계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안정적인 재생에너지 공급은 수소 생산에 있어서도 필수 요소다. 수소는 생산방식과 친환경성에 따라 그레이·그린·핑크·블루 등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그린수소'가 가장 친환경적이다. 이재명 정부의 수소 정책 핵심도 '청정수소 생태계 구축'이다. 현대차그룹은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단지에서 만든 전기를 활용해 수전해 플랜트에서 그린수소 생산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현대차그룹의 과감한 투자가 '신사업 주도권 확보'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현대차그룹은 125조2000억원 규모 국내 투자 계획 발표에 앞서 지난해 8월 미국에 4년 동안 총 260억달러(약 37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자동차·제철 부문 투자와 함께 3만대 규모 로봇 공장 신설 계획이 포함됐다.
한편 현대차그룹의 새만큼 투자 결정은 둔화한 국내 투자·채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가 유발하는 경제효과는 한국은행 등 산업 연관표 기준 약 1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7만1000명 수준의 직·간접 고용 창출 효과가 예상된다. 향후 삼성·SK·LG 등 다른 주요 그룹의 국내 투자 계획도 점차 가시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5년간 R&D를 포함한 국내 투자에 총 450조원을 투입한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128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진행한다. LG그룹도 5년간 100조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