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청구서' 원가부담 커지는 기업들
지난해부터 경영실적 부진, 중동발 리스크가 '부채질'
"가격 올려야 하는데" 李정부 정책 압박에 눈치싸움만
# 식품기업 오뚜기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이 2024년보다 3.8% 증가한 3조6745억원을 기록했다. 외형적으론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773억원으로 20% 줄었다. 원/달러 환율과 원료·부자재 단가가 상승한 탓이다. 영업이익률은 4.8%로 업계 평균수준인 5%를 밑돌았다. 올해는 더 걱정이다. 미국-이란 전쟁 등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물류비 부담과 포장재 가격인상 등 악재가 많아서다.

국내 대다수 유통·식품기업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생산원가 부담이 한계에 가까운 수준에 이르렀다. 밀가루를 비롯한 각종 원재료의 글로벌 가격이 오르면 국내 수입단가는 선주문 물량을 소진하는 2~3개월 뒤부터 영향을 받는다. 이번 전쟁의 여파가 빠르면 2분기 실적부터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유통기업 관계자는 "현재 가격인상 압박요인이 가장 큰 부분은 원/달러 환율"이라며 "해외에서 들여오는 원·부재료가 많아서 환율이 10원만 올라도 앉은 자리에서 수억 원의 손해를 본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이번 전쟁의 충격은 2분기 실적부터 반영돼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는 '어닝쇼크'(실적부진)를 경험하는 유통·식품기업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부터 경영실적이 크게 악화하는 등 위기상황이다. 전년 대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보면 SPC삼립(-59.3%) 빙그레(-32.7%) 롯데웰푸드(-30.3%) 코카콜라음료(-15.5%) CJ제일제당(-15%) 등이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였다. 롯데칠성음료와 대상 등도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경영상황이 악화하자 일부 기업은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롯데웰푸드와 롯데칠성음료는 각각 지난해 4월과 11월에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빙그레와 파리크라상, 코카콜라음료 등도 희망퇴직을 받았다. 업계에선 올해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지만 가격인상 외에는 답이 보이질 않는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주요 식품기업들이 지난해 6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가격인상 계획을 구상조차 못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 2월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관계부처가 참여한 '민생물가 특별관리TF(태스크포스) 유통구조점검팀'을 출범했다. 기업들의 가격인상 움직임을 막는 등 물가를 안정화하는 게 목표다. 정부의 이런 기조는 기업들에 큰 부담이다. 원가부담이 커지고 경영환경은 악화했지만 가격인상을 단행했다가 정부의 눈 밖에 나면 어떤 화살을 맞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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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오는 6월 전국지방선거 이후에나 가격인상을 준비하는 기업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식품 대기업 관계자는 "전쟁을 비롯한 외부요인으로 물류비 상승과 포장재 문제, 원재룟값 인상 등 가격인상 압박이 심한 상황"이라며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서 시기적으로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인 데다 당장은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