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질랜드 정부 고위 관계자들이 SK그룹을 직접 찾아 석유제품 공급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동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한국 정유사들의 전략적 가치가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레이 스미스(Ray Smith) 뉴질랜드 1차산업부 차관과 재닌 스미스(Janine Smith) 뉴질랜드 총리내각부 정책차관보, 던 베넷(Dawn Bennet) 주한 뉴질랜드 대사 등 뉴질랜드 정부 주요 관계자들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SK 본사를 방문해 SK이노베이션(123,400원 ▼100 -0.08%) 자회사인 SK에너지와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위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SK 측에서는 이재용 SK에너지 전략∙운영본부장과 구민찬 SK에너지 최적운영실장 등 경영진이 참석했다.
뉴질랜드 정부 측은 이란 전쟁 발발 이후 한국산 연료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을 언급하며 향후에도 석유제품 공급이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동 정세 불안과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한국의 현재 원유 수급 현황과 공급망 이슈 대응 방안에 큰 관심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질랜드의 한국산 석유제품 의존도는 높은수준이다. 국내석유정보시스템(PEDS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對)뉴질랜드 석유제품 수출 물량은 2366만3000배럴에 달했다. 이는 뉴질랜드의 연간 전체 석유제품 수입량(5812만배럴)의 약 40.7%에 해당된다. 자국 내 유일한 정유공장까지 폐쇄한 뉴질랜드 입장에서는 한국산 공급 차질이 곧 국가 연료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실제로 뉴질랜드는 2018년 석유·가스 탐사 금지 정책을 도입한데 이어 2022년 자국 내 유일한 정유공장의 문까지 닫았다. 사실상 석유제품을 전량을 해외에서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뉴질랜드가 한국산 석유제품 확보에 직접 나서면서 K정유의 공급망 영향력도 재조명되고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이 오히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석유제품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업계는 세계 5위권 정제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고도화 설비를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석유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이 확대될수록 안정적인 생산과 공급 역량을 갖춘 정유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최근 중동사태를 계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 정유업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