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는 저희에겐 절박한 기회입니다."
중국산 저가 제품 공세로 골머리를 앓던 국내 철강업계가 최근 AI 산업 확장을 계기로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새로운 수요처로 삼기 위해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 대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데이터센터 구조재 못지않게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분야가 에너지저장장치(ESS) 인클로저다.
배터리와 전력 제어장치를 보호하는 구조물인 ESS 인클로저엔 열연·냉연강판 등이 사용된다. 국내 철강사들도 극한의 기후 환경을 견딜 수 있는 특수 강판 등 글로벌 요구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철강업계에선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분위기다. 국내 주요 배터리사와 부품업체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베트남 등 해외 공장에서 인클로저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이나 현지산 철강재를 조달하고 있어서다. 설상가상으로 해외에 생산된 저가 인클로저가 국내 시장까지 유입되면서 국내 철강사들의 인클로저 제작업체 공급 물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업계에선 정부나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ESS 사업에서만큼은 국내 생산 제품이나 국내 철강재 사용을 유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공공 조달 시장에서부터 국산 소재 채택이 확대돼야 국내 제조 기반을 지킬 수 있단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향후 통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도 인클로저 국산화는 필요하다. 실제로 미국 관세 당국은 배터리 완제품뿐 아니라 이를 감싸는 구조물의 원산지까지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기적인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국산 철강재 채택이 절실하단 지적이다. AI 데이터센터용 ESS는 기후 조건이 가혹한 북미 북부 지역 등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술적 우위를 갖춘 철강재가 필요하단 얘기다.
최근 정부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는 등 AI 투자 총력전을 펼치며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다만 핵심 전방 산업을 넘어 후방 산업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가 있어야 관련 시너지가 커질 수 있다. 단가만이 아닌 산업 경쟁력을 따지는 조달 전략도 고심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