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소 잡는 칼, 함부로 휘두르면···

[우리가 보는 세상]소 잡는 칼, 함부로 휘두르면···

송지유 기자
2013.11.28 06:20

"면세점이 동네북도 아니고 정말 너무합니다. 신규로 매장을 못 여는 것도 서러운데 이번에는 운영 중인 면세점 매장 면적을 줄이라니요? 면세사업을 하겠다는 중견·중소기업은 보이지도 않는데 정부와 정치권은 대기업 잡기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달 초 홍종학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 때문에 면세점 업계에 초비상이 걸렸다. 대기업의 면세점 매장수를 제한하는 관세법 개정안 시행령이 이미 발효됐는데도 홍 의원이 "(이 시행령 만으로는) 대기업의 독식을 막을 수 없다"며 추가로 규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현행 관세법 시행령에 따르면 대기업은 면세점 특허(점포)수 기준으로 전체 시장의 60% 미만, 중소·중견기업은 2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11월 현재 면세점 비율은 대기업 19개(51.4%), 중소·중견기업 8개(21.6%), 관광공사 등 공기업 10개(27%)다.

여기에 △대기업·중견기업 50% △중소기업 50% △공기업 20% 등 면적 기준으로 면세점 특허 비율을 할당한 홍 의원의 발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롯데·신라 같은 대기업 면세점업체는 기존 사업장을 줄줄이 포기해야 한다. 현재 롯데·신라 등 대기업의 면적기준 면세점 비율이 84.8%인 만큼 이 발의안대로라면 최소 34.8%포인트를 줄여야 하는 것이다.

A면세점 관계자는 "수백, 수천평짜리 기존 매장을 반으로 쪼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50% 면적 기준이 적용된다면 매장 강제 철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대기업에서 뺏은 면세점 특허비율을 중소기업들이 채우기 어렵다는 데 있다. 면세점은 백화점과 달리 브랜드에서 물건을 100% 직매입한 후 재고를 떠안는 구조라 영세한 업체들은 재고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 해외 유명 브랜드와의 협상력도 부담 요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면세점 신규특허를 확대하면서 우후죽순 진입했던 중소·중견기업이 사업을 속속 포기하고 떠났다는 점도 곱씹어 볼 대목이다. 애경그룹 계열사인 AK면세점도 인천공항 매장의 적자 누적을 감당하지 못해 10년만에 사업을 접었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20년 경험이 쌓인 한진과 파라다이스 역시 면세 사업에서 손을 뗐다. 롯데·신라 등 대기업의 시장 장악력이 높아진 것은 이처럼 중소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사업구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의 대기업 면세업체 규제는 휴대폰이나 통신망, 자동차 시장을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으니 중소·중견기업에 나눠주자는 논리와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1년 외국인 1만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방문에서 가장 만족하는 것 1위가 쇼핑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쇼핑 장소로는 1위로 면세점이 꼽혔다. 자연경관이나 문화체험보다는 쇼핑을 목적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필요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면 도를 넘어선 이 같은 규제는 지양해야 한다.

이제 막 해외 진출을 시작한 국내 면세점 업계의 경쟁력 약화도 걱정스럽다. 국내 점포수가 줄고 매출도 줄면 해외 유명 브랜드와의 협상력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면세점은 동네 빵집이나 골목 상권이 아니다. 경제 민주화의 잣대를 강요하기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회의 역할이 아닐까.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송지유 기자

국내외 벤처투자 업계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한 발 더 나간, 한 뼘 더 깊은 소식으로 독자 여러분과 만나겠습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