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코로나공포 '셧다운'시킨 'K-배송']韓 배송 저력 새벽배송, '쿠팡플렉스' 체험해보니

코로나19(COVID-19) 사태 속에서도 역대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한 4·15 총선의 개표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16일 오전 2시. 모두가 잠든 새벽에도 서울 양재동 쿠팡물류센터 앞은 길게 늘어선 수십여 대의 차량들로 붐볐다.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부터 세단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자가용 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들은 '쿠팡 플렉스(Flex)'에 참가한 '일일 쿠팡맨'들. 기자도 부랴부랴 대열에 합류했다.
늦은 밤 '클릭' 한 번의 수고로움으로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원하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산타클로스가 설 자리가 없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배송 시스템 덕분이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사재기 광풍에 휩쓸릴 때, 이른바 'K-배송'은 한국을 사재기 없는 질서정연한 사회로 만들었다. 전염병의 공포까지 '셧다운'한 새벽배송을 직접 체험하러 나선 이유다.

쿠팡 플렉스는 쿠팡이 24시간 배송을 위해 도입한 신개념 배송 시스템이다. 전문 택배인력인 '쿠팡맨'과 달리 일반인이 자기차량을 이용해 할당된 물량을 배송하는 아르바이트로, 건당 1000~2000원 가량을 보수로 받는다. 성별, 학력, 직업에 관계없이 성인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비정규 프리랜서 근로형태의 확산)'의 대표사례 중 하나다.
쿠팡 플렉스는 코로나 위기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언택트(Untact·비대면) 트렌드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급증한 택배 물량을 소화해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쿠팡에 따르면 지난해 초 170만여 건이던 일일 배송물량은 코로나 사태가 시작한 지난 1월 말 330만여 건까지 치솟았다. 6000명의 쿠팡맨 인력으론 한계가 있는 규모다. 이 같은 배송 구멍을 매일 일반 시민에서 쿠팡맨으로 모습을 바꾸는 플렉서들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쿠팡 플렉서들은 철저히 정교한 시스템 속에서 움직인다. 택배 관련 경험이 전무한 초보자도 빠르게 쿠팡맨이 될 수 있다. 쿠팡 플렉스앱을 통해 원하는 지역과 시간대(주간·심야·새벽)를 골라 지원하면 물류를 할당 받는데, 당일 총 배송규모와 지원자의 경험 유무, 차량 크기까지 고려한다.
이날 기자에게 할당된 기프트는 3개 배송지 11건. 어디서 '플렉스좀 해봤다' 하기엔 다소 민망한 수준이었다. 이미 수 차례 경험이 있다는 옆 차량 플렉서가 차에 싣는 물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해당 플렉서는 "많을 땐 40건 안팎의 물량도 받아 봤다"며 "아무래도 첫 업무라 물량 조절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초보 플렉서를 격려했다.
긴장감 속에 시작한 첫 배송은 꽤 수월하게 진행됐다. 앱을 통해 배정된 '기프트'의 주소를 확인해 이동했다. 처음 도착한 곳은 강남역 인근의 한 오피스텔. 구매자가 기입해놓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무사히 입성했다. 출반 전 가끔 구매자들 중 비밀번호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진입에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듣고 긴장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친절한 구매자를 만난 듯 했다.

첫 배송지까지 옮긴 기프트는 총 두 개로, 집 앞에 가지런히 놓고 사진을 찍었다. 오배송·미배송의 우려를 덜고, 구매자에게 제대로 배달한 물건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반드시 사진을 찍어야하기 때문. 앱을 통해 사진을 첨부하고 '배송완료'를 누르니 첫 배달이 끝났다. 생각보다 간단한 과정에 다소 허무하기도 했지만 다른 배송도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며 바로 자리를 옮겼다.
기자가 오전 3시30분부터 총 11개의 기프트를 배송하는데 걸린 시간은 약 1시간30분 정도. 별 탈 없이 일을 마치고 조기 퇴근(?)했다. 다만 첫 업무라 배송물량이 적었던 탓에 손에 쥔 금액은 2만 원이 채 안 됐다. 이날 번 돈은 소득세(3.3%)를 떼고 추후 계좌에 입금된다. 기름값까지 떼면 새벽에 일한 것 치곤 적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며 배송 과정을 돌아보니 40~50개를 배송할 경우 시간에 쫓겨 정신적, 체력적 소모가 상당할 것 같았다. 단순히 부업으로 생각하고 가볍게 하기엔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플렉서들의 수는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현재 쿠팡 플렉스의 가입자 수는 10만 명이 넘는다. 이 중 일 평균 활동인원은 5000여 명을 상회한다. 최근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직접 플렉서로 활동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면서 관심을 갖는 이들은 더욱 늘고 있다. 가끔 지역에 따라 지원자가 많이 몰려 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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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량을 많을수록 벌이도 늘어나 나름 수입은 적지 않은 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배송량 증가로 배송비도 올라 기름값을 빼고도 수 만원을 챙길 수 있다. 물론 배송량이 적은 경우 손에 쥐는 금액이 1~2만원에 불과해 심리적 손해를 감안해야 할 때도 있다. 배송 마감시간을 철저히 지켜야 하고 가끔 요청사항이 번거롭거나 현관 비밀번호를 몰라 애먹는 경우도 있어 배송량이 많으면 시간에 쫓겨 한 겨울에도 등이 땀으로 젖기도 한다.
이날 서초 지역에 모인 새벽시간 플렉서는 50명이 훌쩍 넘었다. 20대 청년부터 40~50대 중장년층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홀로 온 여성 플렉서가 있는가 하면, 부부가 함께 나온 경우도 있었다. 대다수가 부업차 나왔지만 재밌어 보여서 나왔다는 이들도 있다. 이날 플렉서로 참가한 이모씨는 "처음에는 시간도 남고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수입도 쏠쏠해 여유가 있을 때마다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