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기업들은 정부를 가급적 멀리한다. 정부 정책이 기본적으로 '규제'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한국식품산업협회에서 열린 식품업계 간담회는 이례적이다. 정부가 기업들에게 '소집령'을 내려 회의가 열린적은 많았지만, 이번처럼 기업들이 먼저 정부에 만나자고 한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회의엔 농림축산식품부 등 정부 측 인사와 CJ제일제당(193,300원 ▲400 +0.21%)과 농심(364,000원 0%), 대상(17,540원 ▼320 -1.79%) 등 국내 대표 K푸드 기업 20여개 관계자들이 모였다. 기업인들은 한목소리로 "중동전쟁 여파로 고유가, 고환율, 물류비 상승 등 '3중고'에 내수 부진까지 겹쳐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원가 상승 요인을 기업의 희생만으로 상쇄하는 분위기를 제발 없애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정부의 가격통제가 심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기업인들이 비명을 지른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부가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는 기업의 현실을 외면한채 억누르기식 가격 통제에만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적자를 견디지 못하는 기업은 쓰러지고, 경영이 힘들어진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일 것이다.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압박의 결과는 늘 그렇다.
지금의 위기는 기업들의 경영 혁신이나 자구책만으로 돌파할 수 없다.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리스크와 이로 인한 공급망 붕괴는 개별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외생 변수인 탓이다. 중동사태로 나프타 공급이 출렁이면서 필수 포장재 가격이 치솟았고, 라면의 핵심 원료인 팜유와 대두유 등 유지류 가격도 요동쳤다. 여기에 해상운임 상승과 원/달러 환율 변동성까지 커져 마진 구조는 이미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기업들이 이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원가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기업들은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도 못 올렸다. 안으론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밖으론 수출 물류비와 원/달러 환율 리스크에 치이는 구조적 딜레마에 빠졌다.
식품산업은 국민 먹거리와 직결되는 민생의 근간이자, 글로벌 영토를 넓히는 K컬처의 핵심 축이다. 정부가 할 일은 명확하다. 기업들에게 가격 인상 자제를 무조건 강요하지 말아야한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겠다면, 원가 부담을 낮출수 있도록 정책 자금과 세제 혜택을 대폭 늘려야 한다. 그래야 기업들이 버틸 수 있다.
K푸드 기업들이 원가 압박과 부담을 견디지 못하면 결국 문을 닫아야 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오죽했으면 기업들이 먼저 'SOS'를 외치며 정부를 찾았을까. 생존을 위해 기업들이 외친 '비명'을 정부가 외면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