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변혁의 과잉

[광화문]변혁의 과잉

강호병 산업2부장
2012.06.05 17:50

변화는 역사가 발전의 명분을 찾아온 곳이다. 그 결과가 행복의 근접이었는지 또다른 불행의 시초였는지 역사는 답을 아직 주지 않았다. 그러나 속고 또 속아도 사람들은 여전히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세상을 좀더 나은 상태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열망은 정치인에게 좋은 시장판이 돼왔다.

 선거철만 되면 수백 페이지 분량으로 집대성된 비전북이 나온다. 계획은 웅장하고 미사여구로 치장된다. 접전 끝에 한 후보가 최고권력자로 당선된다. 그러나 집권해서 보면 실망감이 폭풍처럼 일고 자연스레 다른 정권으로 넘어간다.

김영삼(YS) 정부에 대한 실망이 김대중(DJ) 정부를 낳은 것처럼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이 이명박(MB) 정부를 탄생시켰다. 다시 MB정권에 대한 뿌리깊은 실망은 또다른 정권의 탄생을 예고한다. 당선 가능성은 인품보다 그 민의코드에 누가 서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한마디로 변혁과잉이다. 그럴듯한 마스터플랜으로 `정말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 현란한 조감도와 개발계획으로 묻지마 분양을 부추기는 개발업자의 선동과 닮았다. 그 웅장한 계획으로의 투신은 거의 참혹했다. 거품이나 환상은 언제나 깨지는 법이니까.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늘 생각지 못한 변수에 밀려 이리 꼬이고 저리 치이며 불만족만 커져갔다.

 더욱이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이다. 그 기간이 주는 한계를 알면서도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군다. 경험상 대통령제는 여야 갈등 조정이 힘들다. 아무리 뭔가 잘못돼도 대통령이 `하야'라는 수치를 감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야당은 기를 쓰고 반대한다. 대통령제에서 여소야대는 최악이다.

 세상을 너무 얕보는 것이다. 세상은 예전과 달리 하나의 잣대로 재기 힘들 정도로 복잡해졌다. 하나를 고치면 또다른 문제와 불만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랜드플랜이 비극으로 끝날 위험 또한 크다는 뜻이다.

웅장한 목표보다 대다수가 공감할 필요한 개혁 한두 개라도 잘 하는 게 낫다. 완성된 형태로 뭘 고치려고 과욕을 부리다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을 줄이느라 더 큰 에너지 낭비를 반복한 것이 많다. 표를 의식해 덜컥 선정된 공약들이라면 그 위험은 더 크다.

 93년에 들어선 문민정부 초기 YS의 지지율이 90%대였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는 지금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기억으론 그때 그 지지율을 이룬 정책은 금융실명제, 쓰레기종량제, 하나회 뿌리뽑기로 대표되는 군부세력 청산 등이었다. 그 자체로는 큰 이념이 들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국민적 공감대가 높은 것들이었다.

 그랜드비전을 앞세운 노선은 불행했다. YS는 이상한(?) `세계화'를 추진하다 환란을 맞고 말았다. DJ정부는 환란 극복을 명분으로 경제개혁 정책을 의욕적으로 펼쳤는데 그것이 그만 영미식 `신자유주의' 계통으로 일어나며 정권 이미지와 맞지 않게 양극화라는 유산을 남겼다.

노무현 정권 때는 공정·분배·균형 같은 가치가 숭상됐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집착은 먹고 사는 문제와 동떨어지게 인식돼 권력을 잃었다. 우파정권이라 할 MB정부는 역설적이게도 서민을 더많이 앞세웠지만 지지율이 바닥이다. 권력창출에 기여한 인사들이 해먹었다는 느낌은 대통령 리더십이 설 땅을 잃게 만들었다.

 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원대한 비전상술이 횡행한다. 복지의 이름으로, 서민의 이름으로 원대한 계획들이 경쟁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식지 않는 글로벌 경쟁은 단칼에 우리 경제를 아름답게 바꾸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재벌의 생긴 모양(지배구조)을 탓하기 전에 불공정 거래 횡포부터 바로 잡는게 중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구호로 치장된 변혁메뉴가 아닌 이리저리 갈라진 틈을 메우는 갈등의 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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