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포항의 모 기업에 근무하는 부장이 회사에서 사랑의 쌀 나누기 단체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을의 집들을 방문하게 됐는데, 올해부터는 도로명주소로 바뀌어 배달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염려한 것. 중간에 점심시간까지 잡아뒀다.
뜻밖에도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첫 번째 배달할 집의 도로명주소를 찾으니 이웃한 인근 집을 찾기가 쉽고도 빨랐다. 지난해 2시간 걸린 배달시간이 올해는 1시간 이내로 줄어들었다. 애써 잡아놓은 점심시간도 자동 취소했다.
도로명주소 부여체계를 조금만 이해하고 실제로 체험해보면 도로명주소로 길을 찾는 게 의외로 더 쉽다. 도로명은 도로의 폭에 따라 대로(8차로 이상), 로(2~7차로), 길(기타 도로)로 구분되며 건물번호는 도로 시작점에서부터 20m 간격으로 왼쪽에는 홀수, 오른쪽에는 짝수 번호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중앙로7'은 2~7차로의 도로이며 중앙로 시작점에서부터 약 70m 정도 떨어진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과학적인 부여체계에도 불구하고 도로명 주소가 여전히 불편한 것일까. 사실 과거 100여 년간 지번주소에 익숙해진 우리로서는 새로운 주소체계 적응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소개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기존 지번방식의 주소는 1918년 일제 강점기의 토지수탈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그동안 산업화, 도시화 등 각종 개발로 인해 토지가 분할·합병되면서 그 순차성이 훼손되는 등 더 이상 주소로 사용하기 어려운 상태가 됐다. 화재·구조 등 긴급상황 발생 시에도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물류비용도 증가하는 등 사회경제적으로 큰 문제가 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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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도로명주소를 사용해 오고 있으며 지번주소를 강제 도입했던 일본도 주소체계를 가구(街區)방식의 주소 또는 도로명주소로 점진적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바둑판 모양으로 도로 설계가 잘 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영국 같은 나라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알프스 주변 국가처럼 산악지형으로 이뤄진 나라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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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명주소 때문에 동(洞) 이름과 옛 전통이 사라졌다고 걱정하는 이들이 있기도 한다. 하지만 도로명주소 체계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으로서의 동은 그대로 있고, 도로명주소 표기 시에도 참고항목으로 법정 동(洞)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국 약 16만개 도로명에도 마을이름·지명·행정구역·문화재 등의 전통적 요소의 반영비율이 96%에 이르며 필요시 지역주민의 동의를 거쳐 바꿀 수 있는 절차도 마련돼 있다.
올해부터 전면사용이 시작된 도로명주소가 아직은 시행 초기여서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 모두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새주소 사용에 적극 참여해 준다면 한국을 찾는 외국인이 길을 더 수월하게 찾고 경찰·소방 등 응급 구조기관의 현장 대응력이 더 빨라질 것이다. 물류 등에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도 대폭 줄어들게 된다. 그만큼 대한민국 국제적 경쟁력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내 주소부터 알고 사용하고, 바꿔보는 건 어떨까. 도로명주소는 홈페이지(www.juso.go.kr)나 인터넷포털, 스마트폰 '주소찾아'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편지나 택배를 보내고 받을 때, 인터넷 쇼핑할 때, 내비게이션에서 길 찾을 때도 도로명주소를 사용해 보자.
정부는 도로명주소와 관련한 국민 불편사항이 없도록 적극 대처해 나가고 실생활에서 도로명주소가 조속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나갈 것이다. 특히 올해에는 주소를 많이 사용하는 생활 밀접분야를 집중 발굴해 주소전환과 활용이 이뤄질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를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