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에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색 직업을 소재로 해 관심을 끌었던 영화 한 편이 있었다. 2006년 미국에서 개봉된 영화 '알리바이(The Alibi)'. 나름 반전과 아이디어가 돋보였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한국 버전으로 치면 '범죄의 재구성'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 속 주인공 직업은 '알리바이 컨설턴트'였다. 고객이 가져 온 사건, 사고가 무엇이든 치밀한 사전 조사와 계획을 통해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 게 그의 역할이다.

'알리바이'의 장면들이 떠오르는 건 요즘 세종청사 공무원들 사이에 회자되는 정 총리의 동선때문이다. 요컨대, 정 총리가 세종에 잠시 '흔적'을 남긴 뒤 서울로 향하는 경우가 부쩍 많아졌다는 것이다. 일정 대부분이 세종에 '머물렀음'을 보여주기 위한 '알리바이' 성격이 짙다는 의심들이다.
지난 21일 오전 세종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정 총리는 회의 직후 서울로 올라갔다. 그 뒤를 차관과 1급 실장들이 뒤따라갔다. 이틀 뒤 세종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도 마찬가지로 정 총리는 회의가 끝나자 마자 헬기편으로 세종을 떠났다.
외견상 "세종에서 일을 다 보고 있지 않느냐"고 내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한 법이다. 정 총리가 잠시 체류의 흔적을 남겼을 지 모르지만 '인 서울(in Seoul)' 행보는 여전하다.
알려진대로 정 총리는 서울과 세종에 각각 공관을 유지하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 총리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지역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국회에서도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정총리의 '세종 부재(不在)'에 대해 '세종시대'를 선도해야 할 총리가 대부분의 일정을 서울에서 진행하는 게 행정도시 건설의 취지에 맞느냐고 따져 묻는다. 오가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적지 않아 세금낭비를 둘러싼 논란도 그치질 않고 있다.
국정감사 자료만 보더라도 지난 1년여(2013년 3월5일~2014년 7월말) 동안 정총리는 평균 10일중 7일을 서울에서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총리실을 포함한 13개 부처가 세종으로 옮겨왔지만 이를 통할해야 할 정 총리는 여전히 '서울사람'인 것이다.
정 총리는 지난 2013년 주소지를 서울에서 세종시로 옮겨 '세종시민'임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총리의 말은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숙박부는 여전히 '서울중심'으로 편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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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집 살림에 드는 비용도 적지 않다. 집 값만 해도 서울공관(566억원)과 세종공관(384억원)을 합쳐 1000억원에 달한다. 작년 기준으로 세종공관은 6억3000만원, 서울공관은 8억7000만원 등 유지비용도 연간 15억원이 넘게 들었을 정도다.
정 총리도 두 집 살림이 가져오는 비효율성을 놓고 할 말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집을 떠나 세종에서 생활하는 1만여명의 공무원을 보면 '세종 정상화'는 정 총리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조만간 국민권익위원회, 법제처 등 3000여명 가까운 공무원들이 서울을 떠나 세종으로 또 이사온다. 낯선 환경에 놓은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전해야 하는 건 온전히 정 총리의 몫이다. 정 총리의 세종 체류가 '알리바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종 총리'로서의 진심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