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보는세상] 더할 나위 없이 취해보자

[우리가보는세상] 더할 나위 없이 취해보자

김고금평 기자
2015.01.0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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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밑바닥에서 더 이상 헤어날 가능성을 읽지 못할 때, 사람들은 불안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정점의 행복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역시 ‘쾌감상실’이라는 또다른 불안감에 고통받기 쉽다.

행복의 극점에서 이 행복이 사라질까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을 의학계에선 ‘안헤도니아’(Anhedonia)라고 부른다. 이 상태는 고산병에서 느끼는 극심한 두통과 비슷해 두통약을 먹으면 금세 가라앉는다. 인간에겐 온전한 행복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다.

도스트예프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에는 어느 하나 부족할 것 없는 귀부인이 조시마 장로를 찾아가 숨겨놓은 비밀 하나 털어놓는 장면이 나온다. 귀부인의 고민은 ‘죽음’이다.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끝없는 불안감을 해소할 방법으로 장로가 내놓은 해결책은 다른 생각 할 겨를없이 사랑을 끝없이 ‘실천’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사랑의 개념을 열거하며 의미를 깨우치는 작업이 아니라, 실제 행함으로써 자신을 희생하고 불사르는 것이다. 순간의 딴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그 일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두려움과 불안을 밀어내고 온전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해법’인 셈이다.

tvN ‘미생’에서 오 차장이 장그래와 함께 한 시간들을 요약한 문장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고 했다. 미물인줄 알았던 비정규직이 요물인 걸 뒤늦게 깨달았고, 영원한 벽이라고 여긴 하찮은 존재가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내뱉은 아낌없는 찬사였다.

그 극찬에서 장그래가 보여준 반응은 기쁨도 웃음도, 우쭐함도 아니었다. 깨달음이었다. 취해있어야한다는 깨달음, 원하는 일을 하기위해 몰입하고 섞이기위해 자신을 바쳐야한다는 일종의 ‘각성’이었다.

“취하라. 항상 취해있어야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쪽으로 꼬부러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위해 당신은 쉴새없이 취해있어야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래도 어쨌든 취해라.”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질 땐 다시 물어봐야할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지금 몇시인가’를. 그러면 세상은 당신에게 또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다시 취할 시간’이라고.

을미년 새해가 당신에게 묻는다. “지난해 당신은 더할 나위 없었나요?” 이 질문에 '나는 정말 행복했습니다’를 답하기위해 당신은 자신에게 또 이렇게 다시 물어야할 것이다. “나는 정말 내가 하는 일에 취해있었는가’를 말이다.

‘안헤도니아’나 ‘죽음’에 대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간과한 것은 무언가 취해있지 못한 상실감과 불안감이다. 취함이 반드시 행복을 보장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불안을 해소할 수는 있다. 올해 다시 이를 악물고 ‘더할 나위 없이 취해보는’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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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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