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지표상으로만 봤을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지난 1분기 GDP(국내총생산) 명목 성장률은 전년동기대비 무려 17.1%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5년 3분기(19.2%) 이후 30년 만에 가장 큰 폭 성장률이다. 10%대를 웃도는 명목 성장률은 과거 고도성장기 때에만 볼 수 있던 숫자다. 최근 부침을 거듭하던 한국 경제가 다시 비상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전 산업 분야가 골고루 선전을 했다기 보단 인공지능(AI) 투자붐에 힘입은 반도체 단일 품목의 유례 없는 수출 호조가 우리 경제의 멱살을 잡고 지표를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물론 반도체 초호황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매우 크다. 우선 대한민국이 시의적절한 투자를 통해 AI 대전환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글로벌 변화를 주도하는 국가가 됐다.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날 막대한 세수는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단일 부문의 호황이 곧 경제의 균형 성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 분야에 지나치게 치우친 성장은 경제 전반에 불균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증시에선 이미 반도체 쏠림 현상에 대한 부작용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반도체 호황은 작년까지 2000선에 머물던 코스피지수를 단숨에 9000선까지 끌어올렸다. 작년 말 30%에 못미쳤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의 증시 비중은 최근 50%대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그 결과 반도체 종목의 급등락에 따라 전체 지수가 8~10% 움직이는 극심한 변동성 장세가 최근 우리 증시의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됐다.
불균형과 변동성은 환율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부터 이달 26일까지 주간거래종가(오후 3시30분) 기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500.1원으로 집계됐다. 분기 평균 환율이 1500원을 넘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분기(1596.8원) 이후 28년 3개월 만이다.
성장률이 고공 비행하고,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상황이라면 환율은 안정적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한국 경제가 최악을 경험했던 외환위기 수준인 1500원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반도체에 치중된 경제 기초체력을 반영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종합해보면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좋고 수출은 호황이다. 하지만 경제 전반엔 불안정과 변동성의 신호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반도체 경기가 예상치 못하게 갑자기 꺾인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 있다. 물가도 미국-이란 전쟁여파로 들썩거리고 있어 하반기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어 경기엔 위협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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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정부는 29일 반도체, AI데이터센터, 피지컬 AI에 대한 대규모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새로 쓰기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한국의 산업지도가 다시 쓰일 정도의 대규모 투자다.
AI가 미래 변화를 이끄는 시기에 반도체 산업이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것은 분명한 행운이다. 정부는 반도체로 촉발된 낙수 효과가 경제 전분야로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산업 전분야로 혁신이 확산될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인재양성, 연구·개발(R&D) 투자, 전력망 및 공급망 투자 등 미래 성장동력 준비에 만반을 기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