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문형표 장관, 야전침대부터 설치하시죠

[광화문]문형표 장관, 야전침대부터 설치하시죠

송기용 부장
2015.06.10 06:58

"윙… 윙…윙…" 지난 6일 오전.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음이 모처럼 맞은 토요일 휴일 평안을 깨뜨렸다. "이 사람들 진짜…" 몇 분 간격으로 3차례나 반복된 문자 내용을 확인하고 화가 벌컥 났다. '긴급재난문자'라는 제목으로 국민안전처가 보낸 메시지는 메르스 예방수칙이라며 '1. 자주 손 씻기 2. 기침·재채기시 입과 코 가리기 3. 발열·호흡기 중상자 접촉 피하기'를 권했다.

뒷북도 정도껏이지, 지난달 20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지 17일 만에 이런 메시지를 보내다니. 메르스 발생 직후 '낙타와 접촉하지 말고, 익히지 않은 낙타고기를 먹지 말라'던 보건복지부 권고만큼이나 황당한 내용이다.

국민안전처라는 조직이 생소해 찾아보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형 재난 발생시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을 위해 국무총리실 직속으로 설치한 장관급 조직이란다. 국가적 재난에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라고 만든 기관에서 기껏 하는 일이 정부 예산으로 상식 수준 내용을 '긴급문자'라고 발송한단 말인가. 감사원 감사나 국회 국정감사 등 훗날 있을 추궁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조치로 밖에 볼 수 없다.

메르스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9일 현재 확진 환자가 95명, 격리자가 2892명으로 3000명에 육박했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으로 한정됐던 메르스 환자가 부산·대전·강원·전북 등 전국으로 퍼졌고 유치원과 초·중·고교, 대학교 중 10%가 넘는 2199곳이 문을 닫았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현실화됐다. '메르스 한 달 가면 한국성장률 0.15%포인트(p) 하락'(모건스탠리)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 플루보다 악재'(LG경제연구원) 등 우울한 전망이 쏟아졌다. 실제로 수원, 평택 등 메르스 환자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매출이 10∼20% 줄었다. 내수부진을 수혈해주던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도 자취를 감췄다. 지난 주말(5~7일) 2만5000여명, 이달 들어서만 4만5600여 명의 외국인이 방한 예약을 취소했고 면세점 예약도 20~30% 감소했다.

메르스 환자가 유독 한국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를 놓고 건조·온화한 기후, 다인실·보호자 상주 병원문화 등 여러 가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의 초등대처 실패를 빼놓고서는 이번 재앙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소통부재’를 근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도 한국의 폭발적인 메르스 전파를 ‘슈퍼 확산’으로 표현하면서 “메르스가 급속히 번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메르스 병원 비공개 원칙을 비판했다.

정부는 7일에야 메르스 감염 관련 병원명을 공개했다. 보건당국의 무능과 무원칙에 대한 국민 불신과 피로감이 극에 달해도 ‘유언비어 배포 엄단’이란 엉뚱한 처방을 내놓았던 정부였다.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던 정부는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현실화되자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명단을 공개했다.

B, D 병원 등 영문 이니셜로만 존재하던 메르스 관련 병원의 실체가 드러났다. 기자회견장에 배석했던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묻고 싶다. 이렇게 허망하게 발표할 거라면 ‘막대한 부작용과 공포’ 운운하며 왜 그토록 비공개 원칙을 고수했는지 말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메르스 사태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한 정리가 이뤄질 것이다. 무능력한 공권력, 놓쳐버린 골든타임, 컨트롤타워 부재… 아마도 1년 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쌍둥이처럼 빼닮은 사례로 기록되지 않을까. 정부가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분발해야 한다. 메르스 방역 사령탑인 문 장관부터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설치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메르스를 잡겠다는 결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