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25일 안산M밸리 록페스티벌 공연 중 OK GO 무대에서 한 외국인이 담배를 입에 물자, 옆에 있던 한국 친구가 “여기서 피면 안된다”는 신호로 고개를 저었다. 이 외국인은 상관없다는 듯 불을 붙여달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끽연을 했다. 주위에 어떤 이도 군중 속 ‘그의 흡연’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이 외국인은 흡연을 마친 뒤 군중 속으로 파고들어가 미친 듯이 춤을 추며 관객 한명 한명을 이어 붙여 기차놀이를 완성했다. 흡연도 하고, 마음껏 몸을 흔들며 노는 현장이 ‘페스티벌의 본질’인데, 관객들은 그간 ‘그러면 안될 것 같은’ 무의식의 규율과 눈치 때문에 내재된 욕망을 억제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문화 자유’의 물꼬를 튼 외국인의 행동에 우리는 그제서야 ‘동참’했을 뿐이다.
어느 순간, ‘통제의 그늘’이 문화에도 침범했다. 수만 명이 모여 가장 자유로운 행동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페스티벌에서조차 감시와 통제, 규율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가수 장기하가 26일 록페스티벌에서만 맛볼 수 있는 퍼포먼스를 구현하자, 경호원들이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심지어 관객의 얼굴을 뒤통수로 가격하는 아찔한 상황도 서슴지 않았다. 안전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임무가 완장 찬 권력으로 어느새 ‘변질’된 것이다.
지난 5월 열린 서울재즈페스티벌 현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객석 맨 끝에 의자를 놓은 관객에게 노점상 철수 명령하듯 경호원들이 손을 허리에 차고 ‘위협아닌 위협’ 발언을 했다. 나중에 사과를 건네긴 했지만, 이 같은 위압은 계속됐다.
미카 공연에선 신나는 리듬에 2층 관객이 스탠딩으로 즐기려하자, 경호원이 인상을 쓰며 “앉으라”고 명령했고 이 관객은 불만을 토로하며 무대를 빠져나갔다. 페스티벌 내에 마련된 간이 흡연실에선 1cm만 흡연 구역을 벗어나도 “들어가라”고 수시로 제지했다.
페스티벌의 전체 그림을 분석하면 이렇다. 일단 포화상태로 표를 팔아 관객을 밀집시킨 뒤 순서대로 ‘배치’한다. 앞줄 스탠딩, 그 다음 줄 돗자리 관객, 맨 뒤엔 의자 관객 등 잘 정렬된 관객 배치를 보면, 보병·기마병으로 나눈 군사 문화와 차이가 없다.
잔디밭 내에선 어떤 양산도, 어떤 의자도 세울 수 없다. 빽빽이 늘어선 관객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적정선의 해답을 찾다보니, ‘통제’가 필요한 셈이다. 예전 록페스티벌에서 흔히 보던 깃발 문화(특히 토끼 인형 깃발은 페스티벌의 상징)도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획일화된 통제가 드리우면서, 페스티벌 개성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개성을 앞세운 문화라는 이름으로 서로 알아가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소통의 특징들이 거세됐다. 문화융성은 풀어놓을 때 역설적으로 더 많은 가치와 개성을 낳는 법이다. 사람이 많이 찾는다고 융성인가? 통제가 확산된 문화 영역에서 ‘융성’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