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국민이면 그 정도(서태지 노래)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짜진 각본이라 해도 열광하기 충분했다. 8일 인천 송도 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15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의 서태지 무대. 스탠딩석에서 올라온 어떤 관객이 던진 말이다. 기대 이상이었다. 그들은 넘칠 만큼 즐거운 쇼를 보였고, 관중들은 환호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이라는 재치있는 말에 ‘빵’ 터지면서도 가슴 한쪽이 쿵 내려앉은 이유는 서태지 세대인데도 서태지를 모른 채 지났다는 생각에서다.
1992년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는 나보다 두 살 적으니 또래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난 ‘난 알아요’나 ‘교실이데아’ 정도를 듬성듬성 따라 부르며 대학을 졸업한 정도다.
엉뚱한 사건 하나. 어깨 힘주고 ‘변혁’을 말하던 어떤 나이 든 선배가 파마하고 반바지 차림에 샌들을 신고 나타났다. “변혁 따윈 필요 없다. 이제는 문화운동이야.” ‘서태지 신드롬’이 가져온 변화였다. 어이없었지만, 그 시기는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이른바 ‘80년대 대학 문화’도 함께 무너진 때였기에 그런 현상의 하나로 받아들였던 기억이다.

20년도 더 지나 인제 와서 서태지 타령이라니. 나의 음악적 취향에 아주 반하는 밴드가 아니고, 그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 조금 더 귀를 기울인다는 게 맞겠다. 물론, 20대의 열정을 잃지 않은 ‘아저씨’를 보는 즐거움과 그에 대한 박수도 포함돼있다.
실은 그 날 더 신선했던 건 서태지보다 ‘사람들’이었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즐기는 젊은이나 외국인은 그렇다 치고, 아이를 목마 태워 덩실덩실 춤추는 아빠, 시끄러운 전자음악에서도 곤히 잠든 아이에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박자를 맞추는 엄마. 자신의 문화를 즐기는 내 또래 어른의 모습, 내가 잘 몰랐던 문화를 한껏 즐기는 이들의 자유였다.
록페스티벌의 여운을 그렇게 곱씹을 때 또 다른 단상이 이어진다. 출근길 버스 차창으로 스치는 문구.“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 백범 김구 선생
공원이 들어설 것으로 알려진 서대문 쪽 입간판에 새겨진 글이다. 오가며 늘 보던 문장인데도 온 나라가 광복 70주년을 기린다고 떠들썩해서 그런지 새삼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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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화의 힘은 우리뿐 아니라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고 했던 김구 선생에게 문화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독립과 절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 정부는 재정의 2%까지 문화 관련 예산을 늘리며 어느 정부보다 문화 부흥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정부가 생각하는 문화부흥이 무엇이든 단기간 내에 성과로 보여주긴 쉽지 않을 거다. 획일화할 수 없는 게 문화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판을 될 수 있는 한 더 넓게 더 다양하게 더 많이 만들고, 이질적인 것마저 수용할 수 있도록 다른 것을 ‘색출’하려 들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대에서 선 44살 가수는 “아직도 유효한 외침”이라며 “됐어, 됐어, 이제 그만 됐어”를 선창했다. 물은 고이면 썩고, ‘꼰대’는 21세기에도 재생산된다. 그러니 스무 살이건 마흔 살이건 “고만해”라고 외쳐야 할 땐 외쳐야 한다.
적어도 지난 70년의 문화는 광복과 동시에 분단을 겪고, 급기야 동족 살육을 한 아픈 역사에서 만들어진 결과물 아닌가. 일제의 왜곡은 물론 우리 스스로 왜곡한 문화가 없다고 할 수 없으니 서태지의 외침 정도는 김구 선생도 기꺼이 받아들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