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베이징 천단공원의 대기검측소가 측정한 공기품질지수(AQI)는 정확히 40을 가리켰다. 원래 베이징 AQI는 200을 넘는 것이 다반사고, 500에 육박하기도 하는데 이날 날씨는 청명함, 그 자체였다. 베이징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사람들도 요즘처럼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것은 본 적이 드물다고 말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열병식 블루'라는 말이 나올까?
베이징에서는 2008년 올림픽 당시 '올림픽 블루'를 시작으로 지난해 11월 에이펙(APEC) 회의를 앞두고는 '에이펙 블루'도 등장했다. 'OOO 블루'는 국가적 대행사를 앞두고 중국 환경부가 인위적으로 대기오염 개선에 나서기 때문에 이를 빗대 부르는 유행어다.
중국 환경부는 9월3일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기념 열병식을 앞두고 지난 20일부터 '열병식 블루' 만들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사거리 1만4000km로 미국 전역이 사정권이라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둥펑 41'과 중국판 스텔스 전투기 '젠-20', 전 세계에서 3개국만 보유했다는 전략 폭격기 '훙-6' 등 '군사굴기(군사대국으로 우뚝 일어섬)'를 과시하는 열병식을 그깟 스모그 때문에 망친다면 대륙의 수치다.
그러나 열병식 블루 이면에는 희뿌연 그림자도 엿보인다. 당장 차량 홀짝제로 280만명이 넘는 자가 운전자들이 이틀에 한 번꼴로 불편을 겪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의 새 학년 개학도 열병식 때문에 9월7일로 2주 이상 늦춰져 난데없는 긴 여름방학이 계속되고 있다.
산업계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베이징 뿐 아니라 텐진, 허베이, 산시, 내몽고, 산둥, 허난성 등 7개 성·시의 공장들은 환경부의 날 선 감시 탓에 사실상 정상 가동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이런 공장이 1만 개를 넘는다는 소식까지 들리니 수도권 산업현장은 원치 않는 개점휴업 상태다. 9000곳이 넘는 건설 현장도 공사 기한이 아무리 급해도 2주간은 꼼짝 못한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이 절박한 서민들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열병식이 빨리 끝나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날씨까지 바꿔버릴 수 있다는 중국 정부의 지나친(?) 자신감은 최근 중국 A증시에서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지난 6월15일 이후 A증시가 급락하자 중국 정부는 기준금리 인하, 주식 거래 결산비용 인하, 증시 안정기금 조성, 개별종목 주식 거래 중단, 기업 공개(IPO) 잠정 중단, 공매도 임시 중단, 국영기업 보유 주식 매각 금지 같은 정책들을 숨 가쁘게 쏟아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는 이 위기의 증시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A증시는 17거래일 동안 32%를 빠진 뒤에야 하락세를 멈췄다. 그나마 지난달 8일 반등도 정부 대책이 먹혀들었다기보다는 이 정도 단기 급락은 과도하다고 판단한 시장이 움직여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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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또 다시 지난 11일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A증시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차트는 무너졌고, 투자심리는 공황 자체다. 중국 정부의 대책 중 가장 강력한 대책으로 꼽히는 연기금 30% 주식투자 허용 방침을 지난 주말 내놓았지만 A증시는 이미 설 자리를 잃은 듯 보인다. 24일 A증시는 올 들어 가장 큰 폭 하락했다.
정부가 시장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시장 전체를 자신들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는 없다. 열병식을 앞두고 단 2주간은 베이징 날씨를 조정할 수 있어도, 베이징 날씨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당장 베이징 시민이 모두 난방에 나서는 한 겨울에도 중국 정부가 2주간이나 날씨를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적다.
그것이 시장의 힘이다. 정부 뜻대로만 움직인다면 그것은 시장이 아니다. 자칫 연기금을 섣불리 쏟아 부었다가는 세계 최대 고령화 사회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 중국 정부가 이 시장의 교훈을 어떻게 바로 새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