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공정사회와 그 적들

[광화문]공정사회와 그 적들

송정렬 부장
2015.09.02 03:30

[광화문]

#“97번, 너만은 꼭 보내주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고된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가족들과 외박을 나온 날.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던 그 강원도 시골 터미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신교대 내무반장이 던진 말이다.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막판에 낙하산 하나가 더 떨어져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멀어져갔다.

그때서야 비로서 며칠간 머릿속을 맴돌던 의문이 풀렸다. 훈련소 수료식을 며칠 앞두고 운좋게 훈련병 대상 글짓기 대회에서 1등을 차지 거창한 이름의 ‘00용사상’이라는 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날 오후부터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맹렬한 시상훈련에 돌입했다. 수없이 반복되는 연습에 ‘97번 훈련병, 000’를 수십번 넘게 목이 터져라 외쳐야했지만, 사실 힘든 줄을 몰랐다. 수상의 기쁨보다는 5일짜리 달콤한 포상휴가증이 기다리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다음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무슨 이유에선지 수상연습에서 제외됐다. 어느 누구도 왜 빠졌는지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훈련병 입장에서 그걸 물어볼 처지도 아니었다.

내무반장의 말에서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하나는 낙하산 때문에 내 휴가증이 날아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자가 나만은 아니라는 위로 아닌 위로였다. 부당한 ‘줄’과 ‘빽’ 전횡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군대에서조차 횡행하고 있었던 것. 스물세살의 마음에 그 불공정은 충격이면서 동시에 상처였다.

#“참 어렵다.” 몇 년 전 친분이 있는 한 단체장이 사석에서 푸념처럼 한 말이다. 해당업계 최고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하고, 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장까지 오른 그를 무엇이 이토록 힘들게 하는 것일까.

CEO 시절부터 원칙있고 깐깐했던 그는 스타일대로 단체장 취임 후 취업청탁을 일절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맡고 있는 단체가 이른바 ‘신의 직장’ 중 하나였다는 점이었다. 힘있는 기관이나 힘깨나 쓰는 자리에 있는 분들로부터 청탁전화가 쏟아졌던 것이다.

그는 수심 가득한 얼굴로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전화들도 오고…”라고 말했다. 과연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는 이후 그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했다는 점에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의 취업청탁과 고위층 자녀들의 취업특혜 논란이 일어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게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겠냐마는 최근 취업이나 일자리가 우리 사회의 가장 주요한 이슈다보니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청년세대가 직면한 막막한 현실을 상징하는 단어도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일컫는 3포세대가 어느순간 대인관계와 내집마련까지 포기한 5포 세대로 변했다. 이젠 7포세대, 9포세대, 심지어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기회의 균등과 그 과정의 공정함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품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이 더 많다. 취업설명회장 통로까지 발디딜 틈없이 가득메운 청년들의 눈 속엔 그런 꿈과 희망이 살아 꿈틀댄다. 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정정당당하게 취업경쟁의 관문을 뚫고 내 꿈을 한걸음 한걸음 이뤄가겠다는.

취업청탁이나 고용세습 등 알량한 기득권에 기댄 불공정한 행위들은 그런 꿈과 희망을 짓밟는다. 청년세대를 포기와 좌절을 넘어 분노로 이끌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일자리가 없고, 이것저것 포기해야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현실이라하더라도 그들에게서 내일의 꿈과 희망마저 빼앗는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너무 암담하다. 공정사회를 위협하는 적들과 그들의 반칙들을 결코 좌시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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