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배 한 개비 드릴까요?" 회사 건물 한 켠에 마련된 흡연구역에서 만난 선배에게 담배를 권했다. 그는 올해 초 정부가 담뱃세를 2000원 올릴 때 담배를 끊었다. '정부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 세금 더 걷어가는 모양새가 괘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처음 몇 개월은 잘 버텼다. 하지만 몇 달 전 부터는 담배를 한 개비씩 얻어 피우곤 했다. 그래서 담배를 권한 것인데 이제는 예전처럼 다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모양이다. 선배는 "금연도 하지 않는데 주변에서 얻어 피우기 미안해서 다시 담배를 사기 시작했다"며 민망한 듯 웃었다.
세금 인상으로 잠시 떠났던 흡연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지난 1분기 담배수요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줄었지만 수요 감소폭은 2분기 19%, 3분기 9%로 점차 완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11일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담뱃세 인상안을 발표했다.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참석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이었지만 총대는 복지부 장관이 멨다. 담뱃세 인상이 '증세'가 아니라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정책으로 보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담뱃세 인상 후 9개월 만에, '담뱃세를 올리면 흡연율이 감소해 국민이 건강해 질 것'이라는 정부 발표가 무색해졌다.
전문가들은 담배 소비가 다시 늘어나는 이유를 담뱃세 인상액에서 찾는다. 담뱃세를 2000원 올렸지만 여전히 담배를 사기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담뱃세 인상 논의가 있을 당시 가격 인상으로 금연을 유도하려면 담뱃세를 6000원 정도를 올려 담뱃값을 8000원대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정부의 선택은 2000원이었다. 일각에서는 2000원을 올리면 금연하는 사람이 크게 줄지 않아 세금 징수액이 최대치가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연구결과를 참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실제로 정부 예측은 금연 효과에서는 틀렸지만 세금 징수에서는 정확했다. 2014년 6조7425억원이었던 담배 세수가 내년에는 12조6084억원으로 5조8659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올해 담뱃세 인상은 '거위 깃털 뽑기'에 비유된다. 정부는 거위가 놀라 날뛰지 않은 수준만큼 담뱃세를 올렸고, 흡연자들은 아픔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깃털(세금)을 뽑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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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관련 세금은 천문학적으로 늘었지만 정부 금연지원 사업의 내년도 예산은 올해(1475억원)보다 10% 이상 줄어들었다. 이와 관련, 여론이 악화되자 복지부가 금연치료 지원 사업을 활성화 하는 방안을 내놓을 모양이다. 이마저도 내부 전산프로그램 보완을 이유로 당초 발표 시기보다 2주가량 늦어지고 있다. 예산이 줄어든 마당에 얼마나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지 의문이지만 '국민 건강 증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대책이 제시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여전히 담배를 끊지 못한 채 깃털이 뽑히고 있는 거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