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TV를 없앴다. 그러나...

[광화문] TV를 없앴다. 그러나...

서정아 부국장겸경제부장
2015.10.02 03:22

TV를 없앤 지 두 달 반이 지났다.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한 TV 때문에 괜한 싸움도 잦고, 특히 채널이 많아지면서 시간만 아까운 프로그램이 많아 결단을 내렸다. TV를 워낙 좋아한 내가 40 여년의 인생 동안 TV 없이 살기는 처음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는 동안 중국 TV까지 열심히 보았고, 나중에는 위성 안테나를 설치해 한국 TV를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TV가 소음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연예인 A씨의 이혼과 정치인 B씨의 막말에 필요이상으로 분개하고 싶지 않았다. 북한의 누군가 머리스타일을 바꾸었다는 걸 내가 왜 알아야 하지?

일단 TV를 없애자 금단현상까지는 아니어도,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뭘 해야할지 헤맸다. 보통 퇴근하면 거실 소파에 기대앉아 리모콘으로 TV를 켠다. 이 행위는 “나는 휴식모드에 돌입했다”를 나 자신과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다. TV 내용과는 상관없는 일종의 세레모니다. 수십년간 몸에 배인 이 절차가 없어지다 보니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지 않았다. 습관이 정말 무섭다.

그 다음 변화는 TV를 멀리하다 보니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검색어를 따라잡기 힘들고 자연스레 포털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검색어라는 것의 절반은 TV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다. 마치 전국민이 24시간 TV만 보고 있는 것처럼. '실시간 검색어=온에어중인 방송프로그램'에서 멀어지니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딱히 누르고 싶은게 없어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절감하는 것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TV는 없앴지만 도처에 TV가 있다는 사실의 발견이다. ‘거실에 자리 잡은 TV’, 하드웨어로서의 TV는 옛말이다. 모든 곳에서 TV를 접할 수 있었다. PC는 물론이고 태블릿, 스마트폰 어디에든 TV가 있다. 지하철, 버스 안에도 있다. 시간도 구애받지 않는다. Anywhere I go. 1인 1 TV를 넘어서 1인 다(多) TV인 셈이다.

영화 ‘마이너리티’에서 보았던 허공에 손을 저으며 모니터를 보던 시대가 곧 다가오는 게 실감났다.그렇잖아도 이미 헬리오 디스플레이라는 것이 개발중이며, 곧 식탁, 냉장고, 창문이 바로 스크린이 돼 동영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아이들 방의 스크린은 동화를 읽어주는 부모의 음성을 인식해 책의 내용과 유사한 영상을 천정 위 스크린에 비추어주게 된단다. 미래의 TV는 모든 곳에 존재하는 스크린이고, 지금의 하드웨어적 TV는 사라지거나 보조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TV는 없앴지만, TV를 여전히 보고 있는 상황이다. 가끔은 과장해서 말하면 TV라는 것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다.

1980년 처음 컬러TV가 집에 들어왔을 때 오색찬란한 만화를 보고 충격받았던 게 떠오른다. 또 10여년 전 대형 HDTV가 등장하면서 ‘드라마 폐인’으로 살았던 때도 있었다. 그 설렘과 중독이 이제 짜증과 외면의 대상으로 변해버렸다.

컨텐츠의 물량공세가 질을 악화시키고,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전 방송을 괴기함으로 물들게 했다. 다양한 매체와 전달기술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거기에 실을 컨텐츠는 대중의 수준을 오히려 끌어내리고 있다. 마침 스마트폰에서 광고차단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이 나와 화제다. 순식간에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보고 싶은 것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많은 세상이다. 아니, 여전히 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볼 수 없는 세상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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