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만큼 설레는 말 ‘밥먹자’

'사랑한다'만큼 설레는 말 ‘밥먹자’

김고금평 기자
2015.12.28 03:10

[우리가보는세상]

tvN ‘응답하라 1988’(응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중 하나가 ‘밥상’이다. 밥때가 되면 이 집 저 집 모두 분주하다. “밥 먹어”라며 식구들 부르는 어머니의 불호령도 그렇고, 넉넉하게 준비한 반찬 배달하는 아이들의 발걸음도 그렇다.

매일 먹는 끼니, 그것도 꼭 식구와 함께 하는 밥문화가 1인 가구가 유행인 요즘 젊은 세대의 관점에서 보면 생경하고 불편한 진풍경일 수도 있다.

얼마 전 모임에서 만난 한 20대 여성은 점심시간에 “밥먹자”며 “순두부 찌개 어때?”하는 상사 제안에 기겁했다고 한다. 자신은 간단하게 커피 한잔에 베이글 빵 하나로 혼자 즐기고 싶은데 굳이 여러 숟가락을 하나의 찌개에 넣는 불편한 문화에 동참해야 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영화 ‘친구2’에서 보스 준석(유오성)이 젊은 건달 성훈(김우빈)에게 “다음 번에 애들과 다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하자, 성훈이 “그냥 돈 주시지예. 괜히 밥먹고 술먹고 하는 거보다 돈만 주면 다 합니더”라고 대답한다. “돈이 있어야 식구가 된다”는 성훈의 주장에 준석은 다시 이렇게 받아친다.

“행님 동생이 와 생기노. 피도 한방울 안 섞인 놈들이 왜 뭉쳐 다니냔 말이다. 어릴 때부터 같이 배고프고, 같이 도망댕기고, 같이 엉엉 울어보기도 하고 그래야 식구가 되는기다. 돈만 준다고 되는 게 아이고.”

‘응팔’에서 함께 즐기는 밥상의 유일한 예외자가 동룡(이동휘)이다. 동룡은 매일 바쁜 부모가 주는 돈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부모와 밥상머리에서 마주하지 못한 동룡은 엄마를 ‘조부장’, 아빠를 ‘학주’(학생주임)라고 부른다.

오토바이 사고로 경찰서에 불려간 동룡이 아직도 낯설고 무서운 엄마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매개가 ‘밥상’이다. 엄마의 손으로 끓여준 미역국, 그 미역국이 동나기까지 곁에 머무르는 엄마를 대상으로 동룡은 그간 일어난 일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엄마는 막내아들이 수다쟁이라는 사실을, 아들은 엄마가 따뜻한 사람이었음을 처음 깨닫는다.

밥상은 끼니해결 이상의 무엇을 건네준다. 천재 바둑기사 최택은 ‘남의 집’에 수시로 불려가 밥 한 끼 얻어먹으며 쌓은 끈끈한 정으로 동네 친구와 이웃들을 ‘친척’이라고 여기며 평소 꺼리던 일들에 적극 나선다. 누구 하나 다치면 동네 사람들 모두 발 벗고 나서기 일쑤다. '밥상'이 발휘하는 힘은 때론 감동적이다.

화가 사석원의 가훈은 ‘같이 밥먹자’이다. 새벽 3시든, 5시든 술 먹고 늦게 귀가해도 아내가 벌떡 일어나 ‘자발적’으로 10첩 반상을 침대 위에 차린다. 그러면 침대 주변에 아이들이 함께 달려들어 숟가락을 든다. 그는 “적어도 하루 한두 끼는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는다”며 “그게 가족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TV에 요리 프로그램은 넘쳐나는데, ‘함께 먹는’ 문화가 늘어났는지는 의문이다. ‘밥먹자’는 권유형 제안은 식상하고 투박하고 재미도 떨어지는 유물일지도 모르지만, 때론 ‘사랑한다’는 말만큼 설레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무기일 수 있다. 그건 당신에 대한 관심을 넘어 ‘가족’이라는 개념에 다가가려는 본능적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한 발짝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그렇게 말해보자.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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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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