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수도 베이징 관문인 서우두 국제공항. 한국 김포공항을 출발해 2시간 만에 도착한 중국 남방항공 CZ318편 승객들이 출국장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길게 줄 서 있다. 날카로운 눈매의 해관(세관) 직원들이 승객의 커다란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마구 헤집고 다녔다. 롯데, 호텔신라, 워커힐 등 면세점 쇼핑백이 찢겨진 채 공항 바닥에 나뒹굴고 한쪽에서는 샤넬, 구찌 등 명품 핸드백을 압류당한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매시간 주요 뉴스로 이 장면을 보도했다. 당국의 엄중한 반입품목 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면세 한도 5000위안(한화 89만원)을 초과한 여행객이 대거 단속됐다면서 검사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관영통신 신화사는 쇼핑이 주목적인 한국 여행을 앞둔 관광객들의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이번 조치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움직임에 대한 보복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위 상황은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허구다. 중국 당국이 유커의 과도한 해외쇼핑 제재에 나설 경우 벌어질 일을 가정했다. 하지만 현실화된다면 한국 관광산업, 특히 면세점에 재앙이 될 것이다. 지난해 면세점 외국인 매출 중 85.7%를 유커가 올릴 만큼 영향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일본(5.6%), 미국(1.4%), 대만(0.5%)과 비교하면 한국 면세점은 사실상 중국 관광객이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수장 리커창 총리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업무보고에서 입국 면세점을 늘리고 관세를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광저우·충칭·텐진·칭다오 등의 공항, 항구에 19개 입국 면세점이 신설됐다. 출국하기 전에 구매 예약하고 입국시 찾는방식으로 운영되는데 하이난성 하이커우의 세계 최대규모 면세점이 일일 최고판매량을 경신하는 등 큰 인기다. 중국 당국은 유커가 해외 면세점에서 많이 찾는 화장품·의류·전기밥솥 등의 관세도 50% 인하했다.
이 같은 조치는 명백히 해외소비를 겨냥한 것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1억2000만 명의 유커가 해외에서 1조2000억 위안(약 211조원)을 소비했는데 사회소비총액의 4%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중국 정부가 올해 목표로 제시한 '6.5%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소비를 막고 내수 소비를 촉진해야 하는 만큼 면세점 영업환경은 갈수록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런데도 면세점이 여전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겨져 신규특허가 나올 때마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제로성장 늪에 빠진 한국에서 지난 5년간 연평균 20% 고속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면세점 매출은 81억4260만달러(9조3300억원)로 3% 증가하는데 그쳤다. 메르스 악재로 유커가 2014년 613만명에서 지난해 598만명으로 감소해 중국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 면세점이 인산인해를 이룰 것이라는 환상 역시 깨진지 오래다.
지난해 5대 주요 면세점 가운데 흑자를 본 것은 롯데, 호텔신라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계는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면세점은 명품 등 물품구입에 수백, 수천억원의 현금이 필요하고 여행객 유치 대가로 여행사에 막대한 리베이트(송객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비유통기업, 중견기업까지 너도나도 뛰어들기에 적합한 업종이 아니다. 정부도 면세점을 육성하려 한다면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처럼 오락가락 정책으로 혼란을 부채질하지 말고 유커 특수가 끝날 때에 대비해 관광인프라 확충 등 경쟁력 제고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