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여자 개인혼영 400m에선 이변이 연출됐다. 헝가리 출신의 카틴카 호스주 선수가 종전 세계기록을 2초07이나 앞당긴 4분 26초3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경기 전 해설자는 “27살의 나이는 수영 종목에선 은퇴할 나이”라고 ‘섣불리’ 소개했다. 수영이 아닌 육상 하듯 ‘달려가는’ 그의 몸놀림에 세계가 놀랐다. 해설자는 “이게 모두 남편의 사랑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우승 뒤 카메라에 잡힌 남편은 어린애처럼 환호했고, 그 순간 아내는 든든한 엄마 같았다.
아직 초반이지만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연일 드러나는 감동의 주인공은 애석(?)하게도 남자가 아닌 여자 선수들이다.
한국에 첫 메달(은메달)을 안긴 정보경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우리 선수단의 최단신(153cm) 유도선수다. 금메달을 따고 싶어 머리 색깔까지 금빛으로 두른 열정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의 메달은 다른 가치로 평가됐다.
리우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들이 보여주는 감동의 연출은 ‘걸 크러시’(girl crush) 열풍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성이 다른 여성에 반하는 ‘걸 크러시’가 경쟁이 심화한 스포츠 분야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셈. 이들은 단순히 예상치 못한 실력을 통해 보여주는 감동을 넘어 흠모하고 싶은 인성이나 감탄할 만한 스토리까지 갖추며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하고 있다.
‘배구 여제’ 김연경은 30득점이라는 놀라운 실력 말고도 너그러운 태도에 찬사를 받고 있다. 실점해도 긍정적 미소를 잃지 않는 그는 득점 후엔 낼 수 있는 최대의 크기로 입을 벌리며 포효하는 모습에서 ‘센 언니’의 이미지를 고수한다.
그보다 나이 많은 여성들도 자신도 모르게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럴듯한 태도가 그에겐 넘친다. 멋있는데 너그러울 것 같고 앳되지만 여유 있는 태도가 마치 ‘나’를 지켜주고 감싸줄 듯한 감정 이입으로 전이되는 식이다.
‘알파걸’이 주로 성공과 능력 자체에 주목한 키워드라면, ‘걸 크러시’는 능력에 인성이 추가된다. 남자 앞에선 평소와 다른 행동으로 ‘예쁜척’ 하거나 시기와 질투로 작은 것에 목숨 거는 부정적 이미지의 여성의 인성은 ‘걸 크러시’에게선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독립심에 강한 승리욕, 옳다고 믿는 자기주장의 확신, 여기에 따뜻한 인간미까지 겸비한 ‘외강내유 여성’들이 리우 올림픽에서 수면 위로 부상했다.
미국의 유튜브 스타인 제나 마블스가 “성적인 감정 없이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로 쓴 ‘걸 크러시’는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도 들어있는 용어다. 국내에선 걸그룹 마마무가 같은 용어의 노래를 발표했고, 이후 김숙 등 연예인이 여성의 통념을 깨는 발언을 쏟아내면서 ‘걸 크러시’ 붐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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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시작해 스포츠로 확장된 ‘걸 크러시’는 여성이 수백 년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철학과 음악(클래식 지휘자) 같은 분야에도 조만간 ‘대세’로 자리 잡을지 모른다. 그간 억눌리고 감춰진 그들의 ‘진짜’ 능력이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