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중앙회는 거대 조직이다. 조합원 수 235만여명, 자산은 약 400조원, 계열사만 31개. 임직원 수는 8만8000여명에 이른다.
대도시는 물론 전국 중·소도시 마다 농협하나로마트에는 서민들의 장바구니 행렬이 늘 줄을 잇는다. 기자도 가끔 ‘외조(外助)’ 한다며 이 대열에 합류했었다.
농협중앙회의 경제활동은 또 어떤가. 유통은 물론, 수출무역, 은행, 보험, 상호금융 등 국민경제에 관여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부실기업 문제에도 관련이 있다. STX조선해양 등 조선·해운업 회사채에 투자했다가 대규모 손실을 본 곳이 바로 농협이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 선거 등 각종 선거마다 농협과 어떻게든 ‘선’을 대려는 정치꾼들의 기웃거림도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의식해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새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된 김병원 회장의 등장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영남세(勢)가 지배한 조직에서 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의 선출직 회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는 전남 나주 출신으로 지역농협에서 실무를 챙겼으며, 조합장 3선을 거쳐 NH무역과 농협양곡 대표이사를 역임한 정통 ‘농협인’이다.
중앙회장 선거전에 뛰어든 그의 선거구호도 남달랐다. 그는 ‘농협중앙회는 조합원인 농민을 위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의 역할 그리고 조직 전반에 걸친 대대적 변화도 예고했다.
취임 직후 농협중앙회 직원들의 ‘정신교육’에 나선 것도 이같은 연장선상에서다. 조직의 중추인 팀장급 이상 구성원을 대상으로 밤을 새워가며 목이 터져라 얘기한 것도 농민을 위한 ‘농협정신의 회복’ 이었다.
바뀐 건 회장 한 사람 뿐인데 그러한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됐다. 구성원들이 조직 내 비효율에 대한 문제점을 공개적 석상에서 이야기 했고, ‘2016년’이 아닌 ‘농협 100년’을 위한 청사진이 논의됐다. 그동안 변방에 머물던 ‘농민’도 그 이야기 한 가운데로 점차 자리를 옮겨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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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병원의 ‘개혁’은 어쩌면 불가능 할지도, 아니면 잠시 추진되다 '도루묵'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불거진 농협중앙회와 그 ‘패밀리(Family)’의 방만경영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문제들이 그런 걱정의 원인이다.
몇몇 사례들을 보면 이렇다. 지역조합이나 인근 조합에서는 여전히 임원 자녀들의 ‘고용세습’이 관행처럼 반복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지역조합 조합장이나 상임이사의 자녀 216명은 부모가 재직하거나 퇴직한 조합 또는 인근조합에 ‘무혈입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모가 영향력을 행사해 조합간 자녀 취업을 ‘품앗이’한 것이다. 이런 물정도 모르고 농협입사를 꿈꾼 ‘흙수저’들로서는 그저 황망할 뿐이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고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골프장 회원권은 790억원어치나 보유했다. 올들어 새로 사들인 골프장 회원권만 49억원(4.5구좌) 규모다.
상반기 농협중앙회 당기순손실은 1357억원, 금융지주 및 계열사의 당기순손실은 2013억원을 기록했다.
아마 김병원 회장이 꿈꾸는 농협조직은 이런 게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 정부에서 농협중앙회의 역할과 기능이 담긴 농협법을 개정하려 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농업인의 이익을 위해 농촌사회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게 농협중앙회의 존재이유라면 그 실천은 멀리있지 않다고 본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예나 지금이나 농민은 그 중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