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광화문]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강기택 경제부장
2016.10.18 06:17

 ‘삶’을 ‘지옥’이라 여긴다면 그 논리적 귀결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다. ‘한국’을 ‘헬조선’으로 인식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출산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역대 최저인 올 상반기 국내 출생아 숫자(21만5200명)는 우리가 사는 시대나 상황의 ‘거울’ 같은 수치다.

 반전의 조짐도 없다. 같은 기간 혼인건수(14만4000건)는 1년 전보다 7.6% 감소했다. 결혼 2년 안에 첫 아이를 갖는 비율이 70%란 점을 고려하면 2년 뒤 출생아 수는 더 줄어든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합계출산율)가 지금처럼 1.24명에 머문다면 출생아 수가 60만명대던 1984~1990년생들의 결혼적령기엔 출생아 수가 30만명대가 된다.

 통계청은 2030년부터는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 무렵부터 사회 각 분야에서 부작용이 시작될 것은 쉽게 예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당장 내 눈앞의 현실이 아니어서 저출산 문제를 겉으론 이해해도 속속들이 체감하지 못한다.

 저출산 문제를 미리 겪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지방소멸’의 저자 마쓰다 히로야는 일본이 진작에 저출산 사회대책 기본법을 제정하고도 효과를 못 본 배경으로 ‘국민의 무관심’을 꼽았다.

 그러나 관심을 갖는다고 해도 저출산은 뾰족한 수단이 없다. 이는 저출산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는 통계나 조사 없이도 모두가 직감적으로 안다.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그 일자리마저 40대 이후엔 불안하다. 주거비용은 높고, 사교육비는 감당키 힘겹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한국전쟁 때 얼마간 흐트러졌던 신분질서는 휴전 뒤 두 세대가 지나면서 ‘굳히기’에 들어갔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고 중산층조차 아이를 키우는 게 버거운 환경에서 출산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가혹한 일이 될 수 있다.

 그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살아내야 할 삶도 만만치 않겠지만 집단적으로 짊어져야 할 국가부채나 조세와 연금 등도 그들의 삶을 옥죌 것이다. 특히나 ‘아이를 낳는 게 임금노예, 세금노예를 만드는 것’이라 여기는 이들에겐 출산하지 않는 것이 그 사회에 대한 부정 또는 저항의 방식일 수도 있다.

 따라서 사회적 구조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1980년대처럼 산아제한 캠페인하듯 해서 출산을 늘릴 수는 없으며 ‘저출산’의 ‘원인’에 더 집중해야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므로 무상보육이든, 무상급식이든 혹은 아동수당이든 간에 “돈 줄 테니 애 더 낳아라”는 현금살포 수준의 사고방식으론 안 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이 저출산을 “국가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고 했지만 현정부에서 그 해법을 준비하는 건 보건복지부의 인구정책총괄과, 출산정책과 2개과에 불과하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위원장 대통령)가 운영되지만 비상설 위원회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도 아니다.

 일본이 ‘1억 총활약상’을 신설해 아베 총리의 최측근을 수장으로 앉힌 것은 국가 차원에서 힘을 싣겠다는 메시지를 주면서 자국민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를 의도한 것이다.

 정치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은 앞으로 ‘저출산 해소’를 위한 실질적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임기 내내 매일 이 문제를 챙길 생각을 해야 한다. 일본처럼 별도 정부기구를 설치하든, 복지부의 인구정책실을 기획재정부로 옮기든 간에 ‘저출산 대책=복지부나 할 일’이라 여기지 말고 교육, 노동, 주거의 새판을 짜야 한다. 급감한 출생아 수에 맞춰 학교와 군대 등 사회 각 분야의 기존 체제를 어떻게 재편할지 고민해야 하고 무작정 출산율만 높이려 들지 말고 적정한 인구 수에 대한 탐색도 해야 한다.

 출생아 수 40만명대의 맏이인 현재 ‘중2’(2002년생)는 5년 뒤엔 대학과 군대에 가고 10년 뒤엔 결혼을 하는 연령대가 된다. 한국 사회는 준비가 덜 돼 있는데 시간은 부족하고 할 일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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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택 논설위원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최고 경지, 머니투데이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독창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기사로 독자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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