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실패해도 괜찮아"

[기자수첩]"실패해도 괜찮아"

세종=권혜민 기자
2019.04.08 04:00

"매년 5만개 넘는 정부 연구개발(R&D) 과제가 진행되는데 성공률이 무려 98%에 달한다."

지난해 7월26일 열린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첫 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R&D 성공률' 얘기를 꺼냈다. 일반적으로 성공률은 높을수록 좋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100%에 가까운 성공률을 칭찬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실패'가 없는 국가 R&D 생태계를 질타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선진국 기초과학 연구 성공률은 20% 수준이다. 이에 비춰 보면 98%라는 수치는 비상식적이다. 이는 국책 R&D 사업 운영 체계와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정부 R&D 과제는 성공 여부로 성과를 평가했다. 그러다보니 평가와 예산 배정이 유리한 단기 성과 과제에만 치중했다. 시장에서 요구하는 창의적·도전적 연구는 이뤄지지 못했다. 기술사업화 성공률이 20~30%에 그친다는 게 그 증거다.

문 대통령이 "R&D의 도전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며 직접 나서자 관계 부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26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시작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산업에 미칠 파급력이 높은 고난도 '난제'에 도전하는 R&D 사업이다. 성공과 실패 여부를 묻지 않고 예산을 과감히 투자한다. 이름도 '연금술사(Alchemist)'에서 따왔다. 철로 금을 만드려 했던 그리스 연금술사들의 실패가 현대 화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데서 착안했다.

모든 국가 정책 중 가장 긴 안목에서 추진해야 하는 게 R&D다. 2000년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나 이차전지 등 차세대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은 10년이 지나서야 결실을 맺었다. 산업판을 바꿀 혁신 기술은 수 차례 실패가 축적된 끝에 탄생한다. 실패를 용인하는 R&D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이유다. 최근 반도체 경기까지 꺾여 수출 부진 우려가 크다. "실패해도 괜찮다"라는 국가 R&D 패러다임의 전환이 다음 먹거리 산업을 발굴하는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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