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포인트 '무너진' 모래성[우보세]

머지포인트 '무너진' 모래성[우보세]

오상헌 기자
2021.08.18 04:00

[우리가 보는 세상] 머지포인트 '돈'으로 산 '신용' 모래성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 100만원에서 시작한 동네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충전 한도가 최근 월 20만까지 쪼그라들었다. 연초 60만원에서, 몇 달 전 40만원으로 줄었는데 또 다시 반토막이다. 100만원 어치를 사면 10% 할인율을 적용해 10만원을 돌려주던 것에서 지금은 인센티브가 2만원(20만원의 10%)에 불과하다. 코로나19로 팍팍해진 일상에 지역화폐를 활용한 '스마트 소비'가 부각됐고, 수요가 몰려 발행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결국 인센티브 예산이 고갈되자 충전 한도를 내리는 고육책을 지자체가 내놓은 것이다.

#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엔 "인센티브가 줄어드는데 누가 지역화폐를 쓰겠느냐"는 원성과 비아냥이 가득하지만 금융 상식으론 당연한 귀결이다.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2018년 3700억원에서 올해 15조원으로 3년 만에 약 40배 가량 폭증했다. 발행액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나눠 부담하는 인센티브 예산을 확대해야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나랏돈이 어디 그러한가. 지역화폐 한도 축소나 인센티브 지급 중단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다. 특단의 예산 증액 대책 혹은 다른 활로가 없다면 지역화폐 인기는 아쉽지만 점점 시들해질 것이다.

# 지역화폐의 배신보다 '앱테크(앱+재테크)족'을 더 큰 충격에 빠뜨린 일이 최근 불거졌다. '머지포인트 사태' 얘기다. 머지포인트 운영사인 머지플러스는 전국 20여 개 유통·식품업체 가맹점 6만여 곳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를 20% 할인된 가격에 팔았다. 상품권(포인트)의 통상 할인율(3~5%)과 견줘 최대 4배, 지역화폐 인센티브(10%)보다도 2배 많은 20% 할인율을 보장했다. 지역화폐와 달리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대형마트 등에서도 포인트를 쓸 수 있고 통신사 멤버십 할인을 중복 적용하면 최대 할인율이 30%에 달했다고 한다. 서비스 개시 3년 만에 110만 이상의 이용자를 모으고 거래액이 1000억원 이상으로 불었다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 이런 머지포인트 서비스가 대폭 축소되고 '머지런'(환불 요구) 사태로까지 번진 건 전자금융업 미등록 무허가 영업이 발단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더 악화한 데엔 다른 이유가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BM)의 불확실성과 금융 플랫폼의 잠재 리스크에 대한 불신 말이다. 플랫폼 기업은 이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손실과 초기 적자를 감내한다. 쿠팡이 그랬고, 네이버와 카카오의 유료화 전 초기 서비스 모델들도 마찬가지였다. 머지포인트는 '무제한 20% 할인'을 플랫폼 확장을 위한 강력한 미끼로 썼다.

#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돈(포인트 할인)으로 신용(플랫폼 이용자)을 사는 건 언젠가 무너질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다. 뚜렷한 수익모델이나 치밀한 유료화 전략, 든든한 총알을 쥔 투자자 뒷배 없이 계속 쌓이는 누적 적자를 스타트업이 감당하기는 어렵다.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공익적 목적에서 나랏돈을 쓰는 지자체도 지역화폐 할인액이 버거워 한도를 줄이는 판국이다.

# 머지포인트 사태로 분명해 진 게 또 있다. 현재 논의 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으론 앞으로 이어질 플랫폼 기업이나 빅테크의 일탈과 사고를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머지포인트가 현금처럼 쓰였듯 선불충전금은 일종의 예금이다. 따라서 빅테크의 선불 충전금 운용과 관리, 이용자 보호에 금융회사 수준의 규율 방안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사고가 터졌으니 국회에 계류된 전금법 개정안부터 빨리 처리하자는 건 땜질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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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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