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치 '볼모'된 국책은행

[기자수첩] 정치 '볼모'된 국책은행

박광범 기자
2022.02.03 04:05

새해 들어 국책은행 직원들의 분위기가 무겁다. 대선을 앞두고 국책은행 지방이전 공약이 또 튀어나온 탓이다. 그중 관심은 KDB산업은행(이하 산은)으로 쏠린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부산을 찾아 산은의 부산 이전을 콕 집어 약속하면서다. 야당 뿐 아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대통령에 당선되면 수도권 공공기관 200여곳 전부를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금융권에선 산은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이전 대상에 포함된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국책은행 지방이전 공약을 내세운 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총선 때는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총선이 끝나면 공공기관 이전 '시즌 2'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국책은행 노사의 강력 반발에 청와대가 '산은, 기은 이전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진화하고 나서야 논란이 일단락됐다. 작년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 때는 야당이 나섰다. 김종인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부산을 '아시아 미래금융도시'로 만들겠다며 "산은 등 정책금융기관을 이전시켜 명실상부한 금융특구의 모습을 갖추게 할 것"이라고 한 것이다.

국책은행 지방이전 공약은 '지역 균형발전'을 취지로 내걸고 있지만, 사실 이 취지도 곱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국책은행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한 표'라도 더 얻겠다는 계산으로 공약을 내놓은 게 뻔히 보여서다. 금융을 잘 모르고 크게 관심도 없는 대선 후보들이 국책은행 본점을 지역민에 주는 '선물'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금융은 집적 효과가 중요하다. 모든 금융사들이 서울에 집중돼있는데, 국책은행만 떼어 지방으로 이전하면 업무 비효율과 국책은행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이라는 특성상 임금에도 제약이 있는 터라 지방이전 시 우수인력 유출도 우려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옮긴 뒤 운용인력 유출로 인력난에 시달린 것을 목격하지 않았는가.

이동걸 산은 회장은 산은의 지방이전 공약을 '소탐대실'(작은 것을 탐하다 큰 손실을 입는다)이라고 꼬집었다. 우려스러운 점은 비록 작더라도 혜택은 정치권이 챙겨가고, 큰 손실의 후폭풍은 국책은행 직원들이 오롯이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금융공약이 오로지 표심만을 위해 활용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사진=박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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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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