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속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MT시평/윤종석]

중국의 속도, 어떻게 읽을 것인가[MT시평/윤종석]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2026.06.01 02:24

"우리에겐 꿈이 없었다." 영화 '비트'의 대사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꿈이 있었다. 1996년, 대학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과학과 기술로 한국과 세계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당시 과학고등학교는 내신 경쟁에만 갇힌 곳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새로운 것을 배우고 함께 토론하며 무엇이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유가 있었다. 그 낙관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학과 사회에서 누군가는 실패했고 방향을 바꾸었고, 의대·기업·금융으로 갔다. 선택을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묻게 된다. 왜 그 꿈은 오래 지속되기 어려웠을까.

최근 '인재전쟁2'가 보여준 중국은 이 질문을 다시 불러냈다. 로봇, 드론, 전기차, 인공지능의 질주는 이제 중국을 '짝퉁'과 '저임금'의 나라로 기억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중국의 속도를 감탄과 공포 사이에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질문은 기술 발전 끝에 무엇이 있는가이다. 성과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기술 발전의 정치적 상상력이다. 데이터와 알고리즘, 공학적 실행력으로 사회를 더 빨리 예측하고 조정하고 동원할 수 있다는 '기술공화국'만이 우리의 비전이 되어선 안된다.

중국을 읽는 일은 남의 나라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안의 기술주의를 성찰하는 일이되어야 한다. 중국의 스마트 통치와 거국체제는 국가가 인재, 데이터, 시장, 지방정부, 기업을 전략 목표에 맞추어 엮는다. 미국의 팔란티어식 세계도 닮은 구석이 있다. 복잡한 현실을 데이터 모델로 만들고, 안보와 산업과 행정을 실시간 의사결정 체계로 묶으려 한다. 우리 안에도 더 빠른 행정, 더 정교한 선발, 더 효율적인 교육, 더 빈틈없는 관리에 대한 조급함이 있다.

중국에서 배울 점은 분명 있다. 이공계 인재를 사회의 중심에 놓는 문화, 교실과 현장을 잇는 교육, 빠르게 실험하고 실패를 흡수하는 생태계다. 그러나 996식 장시간 노동, 국가주의적 성공담, 감시와 최적화를 통치의 언어로 삼는 방식, 실패의 비용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는 따라갈 길이 아니다. 속도가 빠른 사회가 언제나 좋은 사회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목표를 정하고, 누가 데이터가 되며, 누가 오류의 비용을 감당하는가이다.

한국 청년들이 도전할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실패를 품을 공간이 부족하다. 시장은 작고, 회수 경로는 좁고,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불안이 도전 의지를 꺾는다. 그러니 가장 안전한 길이 가장 합리적인 길이 된다. 한국은 미국도 중국도 아니고, 이를 모방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의 방식으로 혁신을 만들어내고, 세계를 위해 기여를 늘려야 한다. 새로운 상상력으로 시대에 필요한 실험을 선도하고, 대학·기업·투자·공공이 위험을 나누며, 기술에 인간의 온기를 담는 한국형 인재 생태계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꿈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꿈을 오래 지속시킬 힘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속도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중국처럼 될 것인가가 아니다.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읽고, 그 거울 속에서 어떤 한국을 다시 만들 것인가다.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윤종석 서울시립대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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