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간호법, 큰 그림에서 봤으면

[투데이 窓]간호법, 큰 그림에서 봤으면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2023.05.23 02:15
최혁용 변호사
최혁용 변호사

간호법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되었다. 간호업무의 탈의료기관화에 대한 우려 및 이로 인한 국민들의 건강 불안감 초래, 간호조무사·의사 등 유관 직업군과 간호사 간 갈등을 포함한 사회적 갈등의 미해결 등을 이유로 들었다.

여야 의원 총 93명이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법안이라는 사실, 본래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도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일단 빼고 보자.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한 법안인지 아닌지 이런 문제도 굳이 보태지 않으련다. 다시 보니 잘못된 거라면 설사 과거에 법안을 발의했더라도 지금은 반대할 수 있다. 공약이 대순가. 거부권 행사도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 있다. 문제는 내용이다.

간호업무가 탈의료기관화하면 우려가 생기나? 지역사회, 생활세계에서 간호사를 만나면 국민들에게 건강 불안감이 생기나? 우리 국민은 의료기관 내에서만 간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가? 정반대다.

장애인, 노약자 등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많다. 방문진료, 가정간호, 지역사회 돌봄 등이 다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노력이다.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를 제공해서는 고령화와 만성병을 해결할 수 없다.

고혈압·당뇨병이 병원에 간다고 낫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다 안다. 일상생활 속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의료기관 밖에서도 지속적인 조력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간호업무가 탈의료기관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국민 건강에 불안이 조성된다고 우려한다. 거부권 행사야 할 수 있다 치더라도 이런 이유는 생경하다.

모든 보건의료인이 우리 사회의 노령화로 인한 질병수요에 대응하고 만성병 관리의 효율성과 적정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핵심에 탈기관화가 있었다. 이 방향성에 대해 의심한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의 경로의존성과 복잡하게 뒤얽힌 이해관계, 경제적 보상방식의 난항 등으로 인해 기존 급성병 중심 공급체계를 바꾸는 게 너무나 어려웠을 뿐이었다.

멀리 있는 목표지만 한 발 두 발 힘든 걸음을 내딛고 있는데 대통령이 나서서 그쪽은 길이 아니라고 한다. 간호사는 병원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간호법은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였다. 소위 목적조항이다. 이 문구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되는가?

대한의사협회는 바로 이 문구 때문에 간호사의 업무영역이 의료기관 밖으로 확대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도 간호사는 의료법에 근거해서 의료기관 밖에서 간호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 그래야만 한다. 병원 내에서만 간호를 받으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국민이 불편하고 불안하겠는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도, 병원 문턱이 높은 장애인도 간호받아야 한다. 집에서, 지역에서, 노인시설에서, 직장에서, 어디든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건의료가 공급되어야 한다.

이미 하고 있는 일이고 앞으로 더 확대되어야 하는 일인데 단지 갈등이 있다는 이유로 법안을 거부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의협은 간호사들이 돌봄기관을 세우고 독자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그런데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 범위와 관련해서는 현행 의료법과 달라진 것이 없다. 의료기관 개설 자격도 의료법이 정한다. 우려할 수는 있지만 현행법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법안 거부 사유로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합당한 이유를 필자는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간호조무사의 학력상한 조항에 대해서는 정부와 여당의 합리적 판단이 반드시 결실을 맺기를 소망한다.

간호협회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2년 의료법에 규정한 내용을 간호법이 그대로 가져왔을 뿐이고 간호법이 새로 간호조무사 자격의 학력상한을 신설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간호조무사 시험합격자의 41%는 대졸 이상 학력자였다고도 주장한다. 맞다. 그러나 사실을 호도한다. 핵심은 간호협회가 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생기는 것을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간호조무 관련 대학 졸업자는 아예 시험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바로 이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에 간호조무과가 생길 경우 이들 졸업자에게도 시험응시자격을 주는 법안이다. 물론 간호협회는 법안에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아무래도 "그저 의료법을 그대로 가져왔을 뿐"은 아닌 것 같다.

정부도 나섰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간호조무사에 대한 학력상한은 다른 직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례로 국민의 직업선택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하였고 이를 간호법 거부 사유로 들었다. 복지부는 당정협의를 거쳐 간호조무사 학력상한 철폐를 검토한다고 발표했다.

학력상한은 단순히 직업선택의 자유만을 제한하는 규정이 아니다. 의료공급의 질과 양에 관련된 문제다. 우리나라는 의료 공급의 만성적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가 필요하다. 의료의 질적 제고도 요청된다. 간호사는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호조무사도 마찬가지다. NP 활성화와 PA 도입은 간호사 등의 업무 범위를 넓힐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간호조무사는 간호조무사의 역할영역을 확대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소망하는 변화다. 간호법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호법이 개혁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간호협회는 대학 교육을 통한 간호조무사의 양성 방법을 인정해야 한다. 국회는 간호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렇게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