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받는 퇴직연금 운용 보고서를 아주 오랜만에 열어 봤다. 가입한 지 십 수년 째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떤 상품이 들어있는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운용 보고서만 쌓여가고 있었다. 가입한 기억도 나지 않는 채권형 펀드와 현금성 자산만으로 구성된 단촐한 포트폴리오다. 가입 시점부터의 수익률은 연 평균 1.19%에 그치고 있다. 예금 금리보다도 낮은 수익률…여기에 내 노후를 맡겨도 될까.
비단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직장인들이 일에 치여,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퇴직연금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불안정한 금융시장 움직임에 수익률이 낮은 원리금 보장형 상품에만 기대고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20~30대에게 은퇴 이후는 너무 먼 얘기고 퇴직연금은 주식이나 코인, 부동산으로 대박을 낸 건너 건너의 사례와 비교해 매력적이지 못하다.
은퇴 후 소득을 책임질 퇴직연금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갈수록 고령화되는 사회 구조에서 불안정한 노후의 삶이 늘어나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가 넘는 고령화 사회로 지난 2000년 진입한 이후 초고령화 사회(20% 이상)에 2025년이면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의 낮은 소득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이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높지 않은 것 같다. 국민연금, 개인연금 등 다층 연금체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퇴직연금이지만 번번히 낮은 수익률이 지적돼 왔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2021년을 기준으로 최근 5년, 10년 연평균 각각 1.96%, 2.39%에 불과하다. 적립금이 매년 30조~40조원씩 늘어나며 300조원에 육박하지만 수익률은 처참한 수준이다.
연금으로의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퇴직자의 대부분이 일시금으로 퇴직연금을 수령한다. 연금형태로 수령하는 비율은 4.3% 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이미 퇴직했을 가능성이 높은 60대 이후 가구 소득 가운데 연금 소득 비중이 저조해 다른 직업을 찾는 등 소득을 추가할 방안을 찾아 헤맨다.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에 대한 신뢰도나 접근성이 떨어지는 부분 등도 문제로 꼽힌다.
2005년 도입 이후 제도 개선을 위해 수차례 정책적 개편을 시도했던 퇴직연금은 오는 7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으로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는다 '디폴트옵션'이란 근로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 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영되도록 하는 제도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정기예금이 만기를 맞았는데 가입자가 이를 잊었다면 이자를 거의 못받는 현금성자산으로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으로 운영상품을 정해두면 자산이 방치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향후에도 수익률 개선을 위해 다양한 상품 개발과 도입, 경쟁촉진, 그리고 연금 전환율을 높이기 위한 세제 혜택 제도 도입 등 추가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하지만 우선적으로 가입자 스스로 내 노후의 자산에 관심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