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소멸지역을 밝히는 사람들

[우보세]소멸지역을 밝히는 사람들

이창명 기자
2025.01.06 05:0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부산동구 ESG센터 작업사진/사진제공=부산 동구 ESG센터
부산동구 ESG센터 작업사진/사진제공=부산 동구 ESG센터

인구 300만인 부산광역시에선 부산역에서 딱 10분만 걸어가도 지역소멸 문제를 체감할 수 있다. 방치된 빈집들이 밀집해 있는데 주변에선 사람을 만나기도 어렵다. 가파른 언덕에 지어진 낡은 집들은 이제 더 이상 누가 들어와서 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그동안 몇 차례 부산을 찾았지만 사정이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 몰랐다. 사람들이 몰리는 도심이나 관광지만 찾아간 탓이다.

함께 둘러본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서울이나 수도권이었다면 이미 도시 재생으로 가치가 올랐겠지만 지방 대도시 구도심은 재개발이나 재건축 가능성이 낮다고 하소연했다. 직접 보고 나니 지자체 관계자들의 절박함이 절절히 느껴졌다. 낡고 방치된 빈집들은 주로 경사면에 밀집해 있는데 장마철이나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아찔한 상황이 반복된다고 한다. 윗집이 무너지면 아랫집이 연달아 내려앉는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 어디든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지방 소도시보다 부산처럼 허름한 빈집이 몰려 있는 지역부터 서둘러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닥친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싹틔우는 이들은 있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우리동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센터' 얘기다. 이곳은 2022년 4월 관내 폐가 3개동을 허물어 세운 폐플라스틱 순환 사업장이다. 근무자 50명이 은퇴한 65세 전후의 고령층이고, 수거된 폐플라스틱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든다. 1980년대에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ESG센터 주변의 모습과 달리 내부에는 활기가 넘친다.

폐플라스틱을 모아 무언가 가치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려는 사람들과,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지자체, "우리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다"며 ESG센터에서 근무하는 고령층을 눈앞에서 직접 보면 설명하기 힘든 감동이 느껴진다.

비단 ESG센터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간 전국의 폐교나 폐공장, 죽어가는 재래시장에서 희망을 찾은 이들을 많이 만났다. 버려진 공장에서 강화도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조양방직이 그랬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덕에 유명해진 예산시장은 이제 언제가도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으로 바뀌었다. 30년전 문을 닫은 전북 김제시의 폐양조장은 청년창업가들의 손길을 거쳐 되살아나고 있다.

인구가 100명도 되지 않는 강원도 인제군의 신월리 마을에 방치된 폐교는 도축 직전 구조해 온 꽃풀소들을 활용한 사업과 콘텐츠로 캠핑과 공연까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이 한창이다. 모두가 외면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 버려진 곳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 도전한 사람들의 성공 사례들이다.

해외에서도 관심이 꽤 많다. 꽃풀소로 유명해진 신월리 마을에 외신들이 다녀가는가 하면, 부산 동구의 ESG센터에는 유엔환경계획(UNEP) 관계자들이 방문해 개도국에 소개하고 싶은 사례로 꼽았다고 한다. 인구감소나 지방소멸은 도저히 답을 찾기 어렵고, 어쩔 수 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현장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실행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렇게 절망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앞선다. 새해엔 더 많은 희망과 기대가 지역 사회 곳곳에서 움트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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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명 기자

안녕하세요. 금융부 이창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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