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의 '지니어스법'이 통과된 후 세계 가상자산(암호화폐) 시장이 들썩인다. 실체가 모호한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 자체보다 가상자산의 기술혁신에 기반한 담보부 가상자산인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2022년 테라-루나 사태의 충격 속에 1200억달러까지 줄어든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의 시가총액이 이제 2800억달러를 넘어섰다.
스테이블코인이 21세기 새로운 지급결제 수단으로 각광받는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의 95% 이상이 달러로 표시된다. 사실 국제은행간 결제에서 달러비중은 최근 47%까지 떨어졌는데 이처럼 스테이블코인 기반의 지급결제가 확대되면 달러의 파워가 더욱 강화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지니어스법을 과거 국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역할을 구축한 '브레튼우즈협약'의 21세기 버전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국제 통화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드는 미국 주도의 통화전쟁이 다시 본격화한 셈이다. 아울러 그동안 달러의 일방적 패권에 맞서 중국 등이 주도한 중앙은행 디지털통화(CBDC)에 대한 반대법안도 미국 하원을 통과했는데 심지어 미국 국방수권법(NDAA)의 최신 버전에 같은 맥락의 CBDC 반대조항을 추가하기도 했다. 결국 최근 안보와 경제의 결합 추세가 안보와 통화의 결합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담보자산으로 달러 현금과 연방준비제도 예치금, 그리고 미국 단기국채를 의무화한 점이다. 여기서 최근 위축되는 미국 국채에 대한 해외의 수요를 되살리려는 직접적 목적 못지않게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중앙은행 통화시스템의 안정, 그리고 통화주권 자체가 점차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이해나 영향력에 의존하게 될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 문제다.
사실 가상자산이나 CBDC 논의에서 중요한 쟁점 하나는 현행 은행화폐 시스템의 내재적 불안정성이었다. 은행의 고유한 화폐창조 기능이 생산적 용도보다 비생산적인 신용창출에 치우치면서 금융과잉과 위기를 야기하고 불평등 심화를 초래한 것이다. 하지만 그 대안이 새로운 민간 화폐 창조자의 도입일까. 그나마 중앙은행이나 감독당국의 직접적 규제대상이던 은행에서 벗어나 각종 신기술로 무장한 민간 테크업체들이 과연 경제안정에 도움이 될지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안정적인 화폐의 역할을 충족하지 못하며 금융안정과 통화주권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2022년 이후 가상자산 범죄의 63%에 스테이블 코인이 활용됐다고 한다. 또한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가상자산 부패'의 위험을 제기했다. 실제로 트럼프는 그의 측근들이 관련된 금융기업들과 손잡고 자신의 스테이블코인 'USD1'을 출시했다.
디지털 화폐의 확산과 관련해 대내외적인 통화주권, 또 금융이나 경제안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행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한강 프로젝트'가 중단된 후 시류에 편승해 스테이블코인 쪽으로 돌아선 듯한 모습이 많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