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3년 기준 3만 4121달러로 전세계 196개국 가운데 32위를 기록하며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유엔이 발표한 2025년 세계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47개국 중 58위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순위와 비교하면 국민의 체감 행복 수준은 현저히 낮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 진입 과제도 남아 있어 '명실상부한 선진국'이라 자부하기는 어렵다.
한국의 사회복지정책은 소득분배 완화 효과가 크지 않고 사각지대가 넓다는 한계를 보인다. 세전 소득분배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양호한 수준이지만 복지정책과 조세제도가 적용된 세후 소득 분배는 최하위권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근로장려금은 저소득층의 소득 보전과 노동 지원에 부족하다. 수급자 선정 기준, 급여 구조의 복잡성, 부양의무자 기준의 모호성, 노동 의욕 저하 가능성 등의 문제 탓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역시 취약계층에 충분한 보장을 제공하지 못한다. 플랫폼 경제 확산 속에서 새로 등장한 프리랜서·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장치도 미흡하다.
대안으로 서울시는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디딤돌소득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안한 음의 소득세(NIT) 이론을 적용하고 '하후상박형' 방식으로 설계했다. 기준중위소득 50% 이하와 85% 이하를 구분해 기준소득과 실제소득 차액의 50%를 지원한다. 지난 8월 세계경제학자 대회에서 서울대 이정민 교수팀은 사업의 중간 성과를 발표했다. 3년간 약 5000가구를 분석한 결과, 수급 가구의 식료품 지출은 5%, 의료 지출은 3% 증가했고, 지니계수는 0.30에서 0.26으로 개선됐다. 소득 재분배 효과와 생활 안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노동 공급 감소 가능성과 재정 부담 논의 부족은 보완해야 할 과제다. 이런 결과는 해외에서도 나타난다. 독일 베를린은 기본소득 실험(2021~2024)으로 122명에게 3년간 매월 1200유로를 지급했으나 빈곤층 지원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실험(2017~2018)은 음의 소득세 방식으로 빈곤층 40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정신건강과 주거 안정 등 삶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인공지능(AI)의 발전과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이제 새로운 형태의 소득보장제도를 모색해야 한다. 서울시는 12월 23일 '2025 서울 국제 디딤돌소득 포럼'을 개최한다. 포럼에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로빈슨 교수가 참여해 미래 사회복지제도의 방향을 논의할 예정이다.
로빈슨 교수는 "더 많은 사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이익이 특정 권력 집단에 집중되지 않으며,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철학은 한국이 추구해야 할 소득보장제도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번 포럼이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사회 전체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높이는 투자로서의 '대안적 소득보장제도'를 설계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