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중도(中道)의 허상에 갇힌 한국 정치

[MT시평]중도(中道)의 허상에 갇힌 한국 정치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5.12.15 02:05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최근 둘째 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중도' 이슈가 나왔다. 세상이 좌우로 갈라져 혼란스럽다며 자신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이고 싶다는 한 고교생의 바람은 순수하고 건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그런 딸에게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로서의 중도는 가능하지만 과정으로서의 중도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허상이다."

우리 사회에는 양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간 어딘가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중도라고 착각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중도는 단순히 가운데 선다고 잡히는 것이 아니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평형수가 반대쪽으로 이동해 균형을 맞추고 밸런스보드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좌우로 끊임없이 체중 이동을 해야 하듯 중도란 한쪽 힘의 과잉을 다른 쪽 힘이 조정하고 상쇄하는 동태적 과정이 빚어내는 결과다.

자신을 '중도'로 규정하는 이들은 흔히 남들보다 더 객관적이거나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중도를 가장한 모호한 태도는 대개 판단과 책임을 유보하려는 기회주의와 다르지 않다. 침묵과 거리두기에 머무는 '정태적 중도'는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힘의 불균형을 더 심화시키는 촉매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 역시 중용(中庸)을 단순히 '가운데 멈춰 서 있는 상태'로 이해하지 않았다. 그는 모자라면 보태고 넘치면 덜어내며 끊임없이 중(中)을 향해 조정해 나가는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과정으로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논란들을 살펴보자. 우선 돌연 은퇴를 선언한 배우 조진웅씨의 과거를 둘러싼 논란이다. 중대한 소년범 전력과 이후의 폭행 등 이력이 드러났음에도 특정 진영에서는 그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과 사회상규를 지키려는 노력이라기보다는 '우리 편은 언제나 옳다'는 정파적 편향에 기대어 자기 진영을 감싸려는 맹목적 태도에 가깝다.

보수진영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조사 중인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게시판 연루 의혹에 대해 한 전 대표 측은 "중립적 절차인가"라는 과정적 정당성을 문제 삼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을 퇴행시키는 시도' '트집을 잡아 죽이려 한다'는 식의 호소 역시 결과로서의 균형회복에는 침묵한 채 자기 식구 감싸기에만 몰두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보수 야당 안팎에서 '중도 확장'을 외치는 목소리가 넘쳐나지만 정작 국민의 눈에는 과잉을 덜어내고 모자람을 채우려는 실천적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정체성이 모호한 이합집산과 그에 따른 소모적 갈등만 보인다. '극단을 피하겠다'는 정치적 수사(修辭)만으로는 중도 확장을 위한 반(反) 편향(counterbalance)의 동력을 마련할 수 없다.

다시 맹자로 돌아가 보자. 중도는 결코 제 발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기울어진 현실 정치를 정치역학(政治力學)의 조정 과정을 통해 바로잡은 뒤에야 비로소 확인되는 결과다. '중도 확장'을 빌미로 이도 저도 아닌 기회주의적 허상을 좇으며 표 계산에만 몰두하는 국힘당 정치인들이여, 부디 서둘러 깨어나길 바란다. 국민이 먼저 깨어나는 순간, 때는 이미 늦으리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